그들은 왜 쓸쓸한 결말을 맞았을까요. 유품정리사 김새별 작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중앙일보 유료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가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을 소개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소방대원들은 방범창을 뜯고 들어간 모양이다.
세탁실 쪽 창문이 열려 있었을 게다.
현관문을 따느니 그게 나은 선택이다.
그렇게 집은 덜 훼손됐다.
하지만 고인이 원래부터 열어 놨을 창을 통해 시취는 가스처럼 새 나갔다.
아파트 복도 전체가 악취로 폭발 직전이었다.
시신 수습 뒤 세탁실 창문을 닫아 뒀다는데도 오래 방치된 시신이 뿜어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극에 달한 이웃들의 원성에 의뢰인은 반쯤 정신이 나갔다.
“다 치워주세요. 그런데 냄새도 치울 수 있나요?”
무더위가 밀려오기 전의 일이다.
조금이라도 그 뒤였으면 더 끔찍했을 거다.
여동생이 죽었다.
의뢰인은 언니였다.
현장은 8층짜리 옛날 복도식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죽음의 냄새’가 비릿하게 풍겼다.
각오하고 현관문을 연다.
짐작대로 바닥엔 이불과 옷가지가 얼룩덜룩하다.
부패된 시신을 수습할 때 이럴 수밖에 없다.
되는 대로 방을 뒤져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바닥에 깔아야 미끄러짐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겹 더 깔아 신발에 부패물이 묻는 걸 방지한다.
시신의 기름을 자칫 밟는다면 당신의 발걸음 어디에나 사자(死者)가 뿜어대는 역한 냄새가 꽤 질기게 따라갈 것이다. 당신의 집에까지도….
아파트는 낡았지만 꽤나 널찍했다
넓은 거실에 커다란 주방.
별도의 세탁실.
큰 방도 2개였다.
기다란 베란다를 확장했다면 더 넓어 보였을 것이다.
먼저 거실부터 정리했다.
기름진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치우다 보니 이상했다.
거실 TV 앞에 원래부터 깔려 있었을 법한 두툼한 매트.
그리고 온갖 생필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시신을 수습하면서 경황 없이 이것저것 손에 집히는 대로 이불이나 옷 같은 천 조각들을 깔아댄 건 아니었다.
고인이 원래 그렇게 TV를 중심으로 거실에 살림살이를 늘어놓고 살았던 것 같았다.
또 이상했던 것은 베란다에 빨래걸이가 3개나 놓여 있었다.
거기 걸린 옷들은 빨래가 아니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으로 구매한 새 옷들을 뜯어 옷가게처럼 걸어놨다.
의류 전문점처럼 세련되게 디스플레이를 해놓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집 안에 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물건들이 전부 바닥에 놓여 있어서 어수선했다.
의아한 기분으로 대략의 청소 견적을 가늠하던 차에 의뢰인이 현장에 들렀다.
현장의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을 묻는 것만으로 의뢰인과 고인의 사연을 알 수가 있었다.
여동생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아예 거동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본인이 보조기구를 이용해 밖에 나가는 것을 어릴 때부터 꺼렸다.
거실에 웬만한 살림살이를 늘어놓고 살았던 게 이해가 갔다.
안타까운 건 몸뿐 아니라 마음에 생긴 병이었다.
“동생은 조현병이었어요.
아주 심각한 상태였고 처음엔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어요.
상태가 나빠질수록 병원에 가는 것도 거부했어요.”
병이 심해지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다.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막무가내였다.
먹을 것을 사고, 세금을 내고, 씻고, 청소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생활도 힘들게 됐다.
아파트는 부모님의 유산이었다.
성치 않은 막내딸의 몫으로 남겼고, 의뢰인인 언니도 예전부터 그럴 거라 짐작했다.
언니는 결혼했기에 같이 살 수도 없었고 2~3일에 한 번꼴로 찾아와 챙겼다고 한다.
냉장고도 채워 줘야지, 청소도 해줘야지, 공과금 등도 다 챙겨 줘야 했다.
더구나 동생은 당뇨까지 앓았다.
조현병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챙길 수 있었는데, 갈수록 그것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약을 챙기고 먹는 것까지 돌봐줘야 했지만, 그건 같이 살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언니는 부모가 남긴 동생 집에서 2시간은 넘는 거리에 살았다.
그 먼 거리를 2~3일에 한 번씩 찾아와 챙겼다는 것도 대단했다.
하지만 동생은 결국 혈당 쇼크로 죽었다.
‘동생분이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셨나 봐요’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된 답변은 두 자매의 모질었던 수십 년 세월을 금세 다 토해냈다.
여전히 동생의 시취가 넘실대는 공간에서 언니의 긴 이야기를 잠시 멈추게 해주는 게 그나마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진정하시고요.
가구가 많지 않아 정리는 곧 끝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대충 일이 정리되면 전화드릴게요.
근처 어디에서 좀 쉬고 계세요.”
의뢰인을 잠시 내보내고 나서 일을 서둘러야 했다.
작은 방에 들어간 직원이 나를 불렀다.
“사장님, 이건 다 남자 옷들인데요?”
작은 방에도 빨래걸이에 옷이 가득 걸려 있었다.
베란다에도 그렇게 해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전부 남성용이었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홈쇼핑 남성 의류들이 구석에도 한가득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