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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권 독립이 없으면 법치주의도 없다

중앙일보

2025.09.12 08:15 2025.09.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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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사법개혁’ 속도전에 법원장회의 개최



법원장들은 재판 독립 보장과 공론화 촉구



대법관 증원 등 밀어붙이기식 처리는 안 돼

전국 주요 법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제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전국의 법원장들에게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안에 대한 판사들의 의견을 모아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통상 매년 12월에 모이는 정기회의와 별도로 임시회의를 연 것은 코로나19 관련 안건을 논의한 2022년 3월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어제 7시간 넘게 이어진 회의에서 법원장들은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권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사법개혁 논의에 사법부 참여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 의장인 천 처장은 “사법부 참여 공론화 없이 추진되는 사법개혁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어제 법원장회의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법원이 주최한 다른 행사에서 사법권 독립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어제 오전 ‘제1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사법부가 그 헌신적인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주요 사법제도 개선이 이뤄졌을 때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전례를 바탕으로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에는 현재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사법제도 개편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민주당이 특별한 의욕을 보이는 대법관 증원은 과거에도 여러 번 논의가 있었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던 사안이다. 현재 법원조직법에서 정한 대법관 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올해로 38년째 거의 그대로 유지해왔다. 민주당은 지난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대법관 정원을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당내 논의에선 대법관 정원을 26명으로 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의 명분으로 상고심 재판 지연 해소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등을 내세우지만 법원의 의견은 다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대법관 숫자를 대폭 늘리면)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마비돼 버리기 때문에 법령 해석 통일 기능이 마비돼 버린다”고 지적했다. 대법관이 많아지면 상고심 소부(대법관 네 명)를 늘리는 장점도 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논의가 매우 힘들어지는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란 뜻이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필요성에 동의하나 증원 방식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안에 정권에 우호적인 대법관 숫자를 늘려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꼭 대법원장의 발언이 아니라도 정치권이 사법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 헌법은 사법권의 독립과 모든 국민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아무리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라도 마음대로 법을 고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더구나 국민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법제도 개편이라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정 정치 세력이 사법권 독립을 무시하면 결국 자유민주주의도, 법치주의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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