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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또…사도광산 추도식, 참석자 급 낮추고 강제성 언급 없었다

중앙일보

2025.09.13 22:42 2025.09.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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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불참한 채 열린 일제 강제노역 시설 사도(佐渡)광산 추도식에서 일본이 또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한 전향적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역사 문제에서는 여전한 일본의 경직성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지난 13일 오후 1시30분쯤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相川)개발종합센터에서 일본 측 인사 약 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열었다. 일본 정부 대표로는 오카노 유키코(岡野結城子)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이 참석했다. 오카노는 국장급으로, 차관급인 외무성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정무관이 참석한 지난해에 비해 급이 낮아졌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13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나카노 고 추도식 실행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도식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에도시대(1603~1867) 최대 금광이었던 사도광산은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 약 1500여명이 끌려가 노예나 다름 없는 환경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장소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등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진행하고, 강제징용 역사를 알릴 전시관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전시실 어디에도 강제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표현은 없었고, 지난해 추도식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해 한국은 행사 직전 불참을 결정했다.

2년째 반쪽짜리로 열린 이번 추도식에서도 일본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오카노는 추도사에서 “조선반도에서 온 노동자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환경 아래라 하더라도 위험하고 잔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 선조가 이어온 역사를 되새기며 미래로 계승해 나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면서다.

결국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강제성은 언급하지 않은 채 ‘합법적 식민 지배 하에서 합법적 동원령에 따른 조치’라는 식의 일본 측 기존 논리를 반복한 셈이다.

이와 관련, 일본 측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는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여기서 명심하겠다고 한 ‘결정과 약속’에는 지난 2015년 강제노역시설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한국인들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한 사실을 인정한 것도 포함된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정작 말과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행사 주최 측이 지난해에는 일본 정부 대표 발언을 ‘내빈 인사’로 소개했지만, 올해는 ‘추도사’로 명명한 정도가 사실상 일본이 보인 성의의 전부였다. 정부는 향후 유족들을 초청해 사도광산에서 별도의 추도식을 열어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희생을 기린다는 방침이다. 추도식은 다음달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한·일 간 역사 갈등이 미래지향적 관계의 발목을 잡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하며 한·일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미국보다 앞서 일본을 방문하며 셔틀 외교 재개 의지를 밝힌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추도식은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서 역사수정주의적 왜곡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며 이재명 정부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언론도 우려하고 나섰다. 교도통신은 “작년과 동일한 일본 정부 발언은 피해자를 모욕한 것이 된다. 감사가 아니라 사죄라는 말이 필요하다”는 한·일관계 연구자 요시자와 후미토시(吉澤文壽) 니가타국제정보대 교수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한국 정치 연구자인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도시샤대 교수도 교도에 “세계유산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포함해 전체 역사를 전하는 것으로, 원하는 것만 잘라 내서는 안 된다”며 “전체를 보여주지 않으면 역사수정주의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는 추도식이 그 취지와 성격에 합당한 내용과 형식을 갖춰 온전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이며, 앞으로도 일 측과 계속 협의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올해 만족스러운 결론에 이르지 못했지만,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서 상호 신뢰와 이해를 쌓으면서 여건을 갖춰 나갈 때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협력의 질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도광산 추도식 문제가 모처럼 순풍을 탄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일본 측이 이에 호응하지 않는 이상 양국 간 역사 갈등은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현주.김현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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