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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하면 홍수' 한강에 제방…한해 7700만명 찾는 랜드마크 됐다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60' ㉚]

중앙일보

2025.09.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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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트리거60' ㉚ 한강의 변신 (1967~2025)

시민들이 노들섬공원에서 석양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강은 현대 문화·문명과 정체성의 표상이다. 센강은 프랑스의 낭만과 예술, 템즈강은 영국의 무역과 금융, 라인강은 독일의 산업을 떠올리게 한다. 한강 역시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고, 한강을 ‘민족의 젖줄’이라 부르지 않는가.

한강은 외국인 눈에도 매력이 넘치는 장소다. 할리우드가 영화를 찍고, 글로벌 명품 회사가 패션쇼를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고수부지 풀밭에서 한강을 감상하며, 한강 라면을 먹고, 치맥을 주문해 특유의 한국식 배달 문화를 만끽한다.

1982년 여의도에서 한강종합개발 기공식이 열렸다. [사진 서울역사기록원]
보기에 아름다워 ‘조망권 프리미엄’까지 붙은 한강. 하지만 성을 내면 정말 무서운 강이다. 연간 최대수량이 최소수량의 90배에 이른다. 폭우가 내리면 그만큼 무섭게 물이 붇는다. 이것도 홍수 조절 기능이 강화된 요즘의 얘기다. 예전엔 이 수치가 무려 390을 넘었다. 3배인 미국 미시시피강, 8배인 영국 런던 템즈강, 34배인 프랑스 파리 센강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홍수 기록도 많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3대 기루왕 40년(서기 116년) 때 ‘6월에 큰비가 열흘이나 내려 한강의 물이 넘쳐 민가를 떠내려가게 하고 허물어뜨렸다’고 나온다.

지금의 한강은 50년 전과 모습이 전혀 다르다. 필자는 영동대교가 개통할 즈음(73년) 강남을 개발한다고 불도저가 오가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1966년 대홍수로 주택 2만3000채 침수
과거 한강은 홍수의 주범이었다. 84년 물난리로 서울 풍납동 일대가 잠겨 있다. [중앙포토]
한강의 변신은 홍수 조절 기능, 즉 ‘치수(治水)’에서 시작됐다. 본격적인 개발 계기는 꼭 100년 전인 1925년의 ‘을축(乙丑)년 대홍수’였다. 7월 중순 사흘 동안 한강 중상류에 300~500㎜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졌다. 홍수로 300명 넘는 인명 피해를 입었고, 주택 1만 채 이상이 물에 잠겼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일제는 1927년부터 38년까지 뚝섬·용산·마포·영등포 등지에 약 33㎞에 이르는 제방을 쌓았다.

이 제방은 홍수를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광복 후에도 한강은 수시로 넘쳤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기엔 정부와 서울시의 재정이 너무 빈약했다. 그러다 65년과 66년 연거푸 대홍수를 맞는다. 66년 홍수로 4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가옥 2만3000여 채가 침수됐으며, 이재민이 거의 10만 명에 이르렀다. 언론은 서울이 으뜸가는 도시라는 뜻의 ‘수도(首都)’가 아니라 물의 도시 ‘수도(水都)’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서울시도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한강 상류에 소양강댐을 만들고, 한강에는 도로를 겸한 제방을 쌓기로 했다. 그 제방 겸 도로가 바로 강변도로다.

69년 강변도로 한강대교 남단~영등포 구간(강변1로) 개통식. 승용차 통행료가 20원이었다. [사진 서울역사기록원]
강변도로 중에 67년 9월 개통한 첫 구간이 제1 한강교(현 한강대교)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3.7㎞ 길이의 ‘강변1로’다. 이것이 우리나라 첫 유료도로였다. 요금은 승용차 20원, 버스와 화물차 30원이었다. 서울 시내버스요금이 10원이었으니, 3.7㎞를 달리는 대가로는 꽤 비싼 통행료였다.

강변1로 개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가 차일석 서울시 부시장에게 물었다.

“공사비가 얼마나 들었나?”

“㎞당 약 1억원입니다.”

“서울~부산 거리가 얼마지?”

“430㎞쯤 될 겁니다.”

“경부고속도로는 430억원이면 되겠구먼.”(『한강개발사』, 이덕수)

당시 한강 개발은 서울시의 일이었고, 박정희는 그보다 경부고속도로에 더 신경을 썼던 것이다. 실제 이듬해 착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429억원이 쓰였다.

강변1로는 기존의 제방보다 더 강 쪽으로 들여 쌓았다. 그러다 보니 옛 제방과의 사이, 강이었던 자리에 땅이 생겼다. 서울시는 이걸 택지로 팔아 돈을 벌었다. 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이다. 행정 사업을 벌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다른 사업을 벌이고. 이게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외친 ‘경영 행정’이었다.(『서울도시계획이야기1』, 손정목)

강변1로 준공 직전, 서울시는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한강 양쪽에 총 길이 74㎞의 강변도로를 만들고, 여의도를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계획에 따라 다른 지역에 강변도로를 만들면서도 강변1로 때와 마찬가지로 택지를 개발해 공급했다. 동부이촌동·반포·압구정 등의 아파트 단지가 이렇게 탄생했다. 동부이촌동은 한국수자원개발공사(현 K-water)가 맡아 택지개발 이익을 소양강댐 건설에 보탰다. 이런 과정에서 드넓은 한강 백사장이 사라졌다. 강을 메꾸고 제방을 쌓기 위해 백사장 모래를 마구 퍼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 잠실 지역을 개발하는 모습. [사진 서울역사기록원]
잠실은 운명이 기구하다. 조선 초에는 강북에 붙은 땅이었다. 중종 15년(1520년) 대홍수로 잠실 북쪽에 넓은 물길이 생겨 그만 섬이 돼 버렸다. 그러던 것을 70년대 들어 남쪽 강을 메꿔 강남에 붙였다. 아직 남은 옛 강의 흔적이 바로 석촌호수다.

여의도는 제방(윤중제)용 골재를 확보하려 인근 밤섬을 폭파했다. 그렇게 사라졌던 밤섬을 자연이 되살렸다. 강물에 실려 온 흙이 쌓이고 나무가 자라며 현재 28만㎡(8만5000평) 넓이의 섬이 됐다. 밤섬은 지금도 계속 자라는 중이다.

70년대까지 한강개발이 홍수를 막고 도로를 내며 택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80년대엔 본격적으로 공원화가 진행됐다. 서울올림픽 유치 결정 직후인 81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다. “서울 지역 한강의 골재와 고수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 이로부터 ‘한강종합개발 기본계획’이 탄생했다.(『한강 1968』, 김원)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는’ 한강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다. 남쪽 강변도로를 확장하고 일부 구간은 새로 만들어 올림픽대로를 개통했다. 고수부지엔 공원이 생겼고, 유람선이 다닐 수 있는 깊이로 강바닥을 준설했다. 그 뒤로도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한강은 조금씩 변신했다.

지난여름 여의도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 [중앙포토]
지금 한강공원에는 하루 평균 21만 명, 한해 7700만명이 들른다. 앞으로 서울은 한강을 어떻게 품어야 할까. 한강은 서울을 어떻게 다시 빚어내야 할까.

한강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왜 저렇게 좋은 강에 배들이 다니지 않느냐.” 사실이 그렇다. 유람선이 몇 다닌다고 하지만 워낙 강이 넓고 크다 보니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빗대어 “꺼진 대형 TV 화면처럼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잠수교를 부산 영도대교 같은 도개교로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용하는 것은 한강 자체가 아니라 고수부지일 뿐이다. 핵심인 한강은 그저 바라만 보는 대상이다. 이젠 우리도 한강 자체를 누리고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강에 형형색색의 배들이 떠다니는 모습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인 ‘K팝 데몬 헌터스’ 속편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한강에 큰 요트도 다니게 하기 위해 잠수교 중간 부분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도개교’로 바꾸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런던 템즈강의 명물인 타워브리지나 부산의 영도대교처럼 말이다.

차준홍 기자
서울시가 추진하는 한강 수상버스 운항, 요트 계류장 증설, 수상호텔 건설 등도 모두 ‘바라보는’ 한강을 ‘직접 누리는’ 한강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하지만 유람선·수상호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을 채울 콘텐트다. 어떤 문화를 맛보게 할 것인가다.

K팝, K푸드, ‘한강의 기적’ 스토리 등으로 콘텐트를 꾸밀 수 있다. 단지 우리의 문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패션 같은 융합형 콘텐트도 가능하다. K팝 연습선, 한강 배다리 건너기, 한강 등 축제 등도 생각해 볼 만하다. 한강의 문화와 콘텐트를 선도할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 필요하다. 문화의 소프트파워가 엄청난 글로벌 영향력을 갖는 지금, 한강의 제2의 기적은 문화·관광·콘텐트의 기적이어야 한다. 세계가 함께 꿈꾸고 누릴 수 있는 한강,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issue/11765

※다음은 ‘산아제한과 인구감소’ 편입니다.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전 한강시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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