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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與 총공세에 심상찮다…"대법원장 이 정도는 이겨내야"

중앙일보

2025.09.15 13:00 2025.09.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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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원장 회의가 열린 지난 1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특별재판부를 밀어붙이던 여권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로 급변침하자 “갑자기 사법부 수장의 거취를 겨냥한 이유가 뭐냐”며 일선 판사들이 충격에 빠졌다. 15일 오전부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 대법원장은 반이재명 정치투쟁의 선봉장” “지금이라도 물러나라”고 사퇴를 압박하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까지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언급한 게 알려지면서 법원에 충격파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대법원은 여권의 사퇴 압박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건 물론 온종일 언급 자체를 극도로 자제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입장이 없다. 대통령실 대변인도 ‘입장이 없다’고 정정했지 않느냐”고만 했다.



판사들 “갑자기 이유가 뭐냐” “대법원장이 지귀연 못 바꿔”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일선 판사들 분위기는 달랐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사퇴가 내란 재판과 무슨 관련이 있나. 사법부 수장의 거취를 이야기하려면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하루 이틀 사이에 바뀐 사정이 없어 갑작스럽다”고 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 1심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를 교체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데 대해선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판사가 정치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돼야 한다면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 4회 재판을 하며 올 12월 안에 심리를 마칠 예정인 상황에서 재판장이 바뀌어 변론 갱신 절차를 밟으면 1심 선고만 늦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고법판사는 “특별한 계기가 없이 사퇴 요구가 나오고 있어 당황스럽다”며 “지난 12일 전국법원장회의가 계기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법원이 국가기구로서의 기능을 한 것이지 정치적인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개최된 회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내란전담재판부나 대법관 증원 등 국회가 요구하는 법안들을 빨리 받아들이라는 압력의 일환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법원 내에서는 대법원장의 사퇴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또 다른 고법판사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 대법원장이 이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면서 “사법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공판중심주의, 사실심의 강화 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제2차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서는 “지난 5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예상된 수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지난 5월 민주당은 ‘조희대 특검법’을 발의하는 한편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김민석 선대위원장)” “탄핵시켜야 한다(정청래 당시 법사위원장)”는 등 공세를 이어갔다.

야당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재개되는 게 두렵기 때문(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라며 반발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대통령이 자기 범죄 재판을 막기 위해 대법원장을 쫓아내는 건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탄핵 사유”라고 했다. 나경원 의원은 “법사위원장이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는 것 자체가 헌정사에 있을 수 없는 월권”이라고 했다.



정욱도 부장판사 “사법부, 헌정 수호자 역할 다했나”


내란 재판이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신속성·공정성이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의 당사자인 내란 특검 측도 공판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데 국회가 나서는 모양이 약간 생뚱맞다”고 했다. 이날(15일) 중앙지법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혐의 18차 공판이 열렸다. 내란특검 측은 재판부에 “조지호 경찰청장 등의 사건과 병합해 주 4회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휘를 부탁드린다”고 요청했고, 이어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8일 “12월에는 재판 심리를 마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한편 정욱도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리고 “국민에 대한 존중의 자세로 질책에 응답하며 책임짐으로써 바로 서는 ‘상식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관이 정치인의 권력에, 여론의 압박에, 자본가의 금력에, 인사권자의 권한에 맞서 재판에 온전히 양심을 불어넣을 힘이 오만과 결기 말고 없다”면서 “독립은 오만하게 외쳐야 맞다. 지금이 독립을 주장할 시점인 것도 맞다”고 했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정말 사법부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위협받는 순수하고 무고한 피해자인가”라며 “국가적 위기에 헌정 질서의 수호자,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했나”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냈다.



최서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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