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강가나 빨래터에서 빨래방망이로 옷을 두드리며 때를 빼던 시절이 있었고, 이후에는 빨래판과 비누가 생활필수품이었죠. 20세기 중반 들어서는 전기를 이용한 ‘통돌이 세탁기’가 등장해 가정에 혁신을 불러왔습니다. 이후 버튼만 누르면 일정한 패턴대로 세탁을 하는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세탁은 사람이 아닌 ‘기계에 맡기는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탁기와 세탁세제 시장도 인공지능(AI)의 영향을 받으며 진화하고 있습니다. AI는 더 깨끗한 세탁, 더 적은 물과 에너지 사용, 그리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과거의 세탁이 ‘노동’이었다면, 이제는 ‘지능형 서비스’로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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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 100년 진화…이제 AI 세탁의 시대
특히 시장 데이터는 이 변화를 수치로 증명합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에 따르면 전체 세탁기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약 6~8% 수준인 반면, AI 스마트 세탁기 시장은 12~25%에 달해 2배 이상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AI 세탁기는 이제 단순한 ‘프리미엄 기능’이 아니라, 시장 전체를 견인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세탁기 자체의 진화입니다. 기존 세탁기는 미리 설정된 모드를 기반으로 작동했지만, AI 세탁기는 세탁물의 무게, 종류, 오염 정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가장 적합한 세탁 코스를 자동으로 결정합니다. 삼성전자의 AI 세탁기는 세탁물의 종류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오염도에 따라 세제를 얼마나 투입할지, 몇 번 헹굴지를 스스로 판단합니다.
또한 LG전자는 'AI DD(Direct Drive)' 기술을 통해 세탁물의 무게뿐 아니라, 천의 종류와 패턴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모터의 움직임을 조절하여 섬세한 세탁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면 티셔츠라도 얇고 부드러운 원단과 두껍고 탄탄한 원단에 따라 세탁 방식이 달라지는 거죠. 이처럼 AI 세탁기는 단순히 세탁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판단하고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지능형 도우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미국 가전의 대명사 GE는 스마트HQ(SmartHQ) 앱 내 세탁 보조 AI 기능을 통해 세탁물의 얼룩이나 섬유 종류에 따라 최적의 세탁 설정을 자동으로 추천합니다. 월풀(Whirlpool) 역시 AI 인텔리전스 세탁 기능을 선보이며, 세탁물의 무게와 원단을 자동 감지해 물 온도, 세탁 강도, 시간을 조정하는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두 기업 모두 AI를 활용해 세탁기의 판단 능력을 강화하여 사용자 편의성과 위생,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잡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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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를 만들고 세탁기 유지보수까지
세탁기의 똑똑함은 세제 사용 방식에서도 두드러집니다. AI는 사용자의 세탁 습관과 세탁물의 상태에 따라 세제를 자동으로 계량해 투입합니다. 이를 통해 과도한 세제 사용을 방지하고, 세탁 효율을 높이며, 옷감 손상도 줄일 수 있습니다.
LG전자의 ‘트루스팀 AI 세탁기’는 세제 자동 투입 시스템을 탑재해 사용자가 매번 세제를 넣지 않아도 기계가 알아서 최적의 양을 측정해 투입합니다. 또한 이러한 AI 기반 세제 투입은 물 사용량과 세탁 시간까지 고려하여 세탁의 전체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해외에서는 AI 기반의 세제 설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니레버(Unilever)는 AI와 로보틱스를 활용하여 단시간 세탁에 최적화된 세제인 ‘원더워시’(Wonder Wash)를 개발했습니다. 이 제품은 15분의 짧은 세탁 사이클에서도 세탁물에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AI를 통해 수백만 개의 효소와 분자 조합을 매핑하여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한 사례입니다.
AI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예방적 유지보수입니다. 세탁기의 센서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특정 부품의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고 사용자에게 경고합니다. 이를 통해 고장을 예방하고, 수리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AI 세탁기는 스마트 진단 기능을 통해 제품 상태를 스스로 점검합니다. 앱과 연동해 모터 이상, 물 공급 문제, 배수 오류 등 주요 부품의 이상 징후를 AI가 분석하고, 그 결과를 사용자에게 알려줍니다. 필요할 경우 원격 상담과 AS 신청까지 바로 연계됩니다. 이러한 통합 서비스는 단순 알림을 넘어 문제 해결 과정 전체를 지원함으로써 사용자 만족도를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제조사 입장에서도 제품 품질 향상과 고객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축적된 고장 데이터를 통해 특정 모델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다음 세대 제품 설계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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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 경험의 재구성…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AI 세탁기는 단순히 기능적으로 똑똑할 뿐 아니라,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복잡한 버튼 배열과 용어 때문에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AI 기반 UI/UX가 이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가 사용자의 세탁 패턴을 학습해 자주 사용하는 설정을 자동으로 추천하거나, 날씨와 계절, 시간대에 따라 적절한 세탁 코스를 제안합니다. 특히 음성 인식 기능은 사용자 편의성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통해 음성 명령만으로 세탁 코스나 건조 모드를 설정할 수 있으며, 앱과 연동하면 세탁 진행 상황 확인은 물론 인터넷 검색, 타이머, 계산기 같은 부가 기능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LG전자 역시 자체 AI 플랫폼을 탑재해 음성으로 세탁 옵션을 조절하거나 코스를 실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특히 고령자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용합니다. 복잡한 설정을 외우지 않아도 “운동복 세탁해줘”, “급하게 빨래할 수 있어?” 같이 말하면 AI가 알아서 세탁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는 기기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진정한 의미의 ‘생활 AI’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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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세탁을 바꿉니다
세탁은 그동안 일상의 반복적인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AI는 이 일상에 지능을 부여하고, 세탁이라는 행위를 혁신적인 경험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시장 전망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인텔로(Dataintelo)에 따르면 AI 세탁기 시장은 2023년 약 35억 달러에서 2032년 약 9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단순 편의성을 넘어서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 효율까지 책임지는 생활 AI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AI 세탁기는 더 깨끗하게,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세탁을 잘한다’는 개념조차도 기계가 알아서 해결해주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AI 시대의 세탁은 나만을 위한 세탁, 내 옷에 맞춘 세탁, 스스로 생각하는 세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