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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첫 축구국대 장대일 "카스트로프 자신감 있더라"

중앙일보

2025.09.16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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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혼혈 첫 축구국가대표 장대일. 현 재 세종국대FC 감독으로 초등학생들을 지도한다. 김성태 객원기자

“카스트로프 덕분에 내 이름까지 덩달아 소환돼 기분 좋네요.”

지난 12일 정부 세종청사 체육관에서 만난 장대일(50)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독일계 혼혈선수인 옌스 카스트로프(22·묀헨글라트바흐) 얘기부터 꺼냈다. 장대일은 한국 축구대표팀 혼혈선수 1호다. 카스트로프는 최근 미국 원정 평가전에서 성공적인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장대일은 “카스트로프는 손흥민·이강인에게 패스하기 급급해하지 않고 자신 있게 볼 키핑하고 공격적으로 나가더라. 내년 북중미월드컵 무대를 꼭 밟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축구대표팀 시절 장대일. [중앙포토]
장대일은 한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7년 차범근 당시 대표팀 감독이 “독일 선수 킥을 보는 것 같다”며 그를 국가대표로 뽑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맹활약한 그는 최종 엔트리에 뽑혔지만, 본선에서 그라운드에는 서지 못했다. 그는 “(본선) 벨기에전을 앞두고 ‘(출전을) 준비하라’고 하신 차 감독님이 경질당하시는 바람에”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한 해외 매체가 뽑은 ‘프랑스월드컵 미남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다.

장대일은 1998년부터 프로축구 일화(현 성남FC)와 부산에서 6시즌 간 뛴 뒤 28살이던 2003년 돌연 은퇴했다. TV 드라마에 야쿠자 역으로 출연도 했고, 서울 강남에서 이자카야도 운영했다. 그는 “당시 헛바람이 들었다. 동업자가 가게 돈에 몰래 손을 대는 바람에 2년 만에 망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정신을 차린 뒤 막노동까지 했다. 그 당시 차 감독님을 멀리서 보고도 내 모습이 초라해 인사도 못 드렸다”고 말했다.

축구대표팀 시절 장대일. [중앙포토]
서울에서 태어난 장대일은 5살 때 아버지가 사는 영국 런던 근교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영국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봐 머리칼을 염색해줬다. 정작 어머니 향수병 탓에 2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차별을 겪었다. 그는 “애들이 ‘튀기(혼혈인 비하 표현)’‘헬로 미스터 몽키’ 등으로 부르며 놀렸고, 늘 얻어맞았다”고 회상했다. 당시엔 너무 어려 아버지 이름도 몰랐다. 그는 “대표팀 시절 ‘찰스’로 불렸는데, 사실 아버지 성함이 찰스 흐레드릭 헨리 만탄이었다”며 “(교류가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작년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한국 혼혈 첫 축구국가대표 장대일. 현재 세종국대FC 감독으로 초등학생들을 지도한다. 김성태 객원기자
국가대표 시절 차별 없이 똑같은 태극전사로 대우받았다. 장대일은 “당시 일본그룹 ‘엑스재팬’에 빠져 있었는데, 일본 J리그에서 뛰던 (홍)명보 형이 CD를 묶음으로 사다 주곤 했다”고 기억했다. 옛 동료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던 그는 지난해 9월 열린 ‘레전드 매치’를 통해 축구계로 돌아왔다. 그는 “박경훈 전 감독님이 ‘잠수 좀 그만 타’라고 하셨다. (최)용수 형은 ‘구속됐거나 배 탄 줄 알았다’며 반가워했다”고 전했다.

한국 혼혈 첫 축구국가대표 장대일. 현 재 세종국대FC 감독으로 초등학생들을 지도한다. 김성태 객원기자
한때 생계를 위해 스리잡을 뛰었던 장대일은 현재 세종국대FC 감독으로 초등학생들을 지도한다. 팀을 이끈 지 2년이 돼 가는데, 그간 지역대회 준우승도 일궜고 축구 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많이 배우러 왔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그들 마음을 잘 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국가대표가 되려고 중3 때 영국 국적을 포기했다”며 “요즘 귀화 절차가 복잡한 것 같던데 혼혈선수라도 태극마크에 진심이라면 (귀화) 장벽을 낮춰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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