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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서울대" 당찬 권성동, 그의 운명 바꾼 '스님의 한수' [특검 150일]

중앙일보

2025.09.16 01:52 2025.09.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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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특검의 150일-‘윤핵관’ 권성동, 절체절명의 위기 맞다
9월 16일 오후 2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앞에 선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단호해 보였다. 닷새 전에도 그랬다.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 11일 오후 그 자리였다. 표결 전 발언 기회를 얻은 그는 특검을 향해 “망신 주기와 낙인 찍기에 매진했다”며 “민주당 정권의 수사 기관이 불법적이고 허술한 수사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출세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의원석에선 응원과 비아냥의 목소리가 맞부딪쳤다. 그리고 이어진 표결 뒤 열린 투표함.

찬성173, 반대 1, 기권 1, 무효 2.

이변은 없었다. 본회의장 한쪽에선 환호성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권성동은 구속의 문턱에 서게 됐다. 7년 전 강원랜드에 자신의 측근이 취업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뒤 다시 겪게 된 위기다.

권성동은 강원랜드 사건 땐 무죄 확정 판결까지 받아냈다. 완벽한 부활이었다. 그리고 다시 특검 정국에서 통일교와의 유착 의혹을 받고 찾아온 위기. 이번 결과는 구속이었다. 남세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특검 사무실에 출석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장진영 기자

정권의 몰락은 권성동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특검팀 수사가 가열되면서 아슬아슬해 보이던 그는 이번엔 구속을 면치 못했다.

잘 나가던 ‘비주류 검사’ 권성동
그는 왜 정치인의 길을 택한 걸까. 누구에게나 ‘나도 한때는…’이라며 내세울 만한 시절이 있듯, 권성동도 한때는 잘 나가던 검사였다.

1991년 수원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성실성을 인정받아 1994년 서울지검에 입성한 그다. 그와 검사 생활을 함께했던 변호사 A는 “권성동도 승진 원하고 검사장 되고 싶어하던 보통의 검사였다”며 “위아래 사람에게 모두 친근하게 대해줬다”고 회고했다. 물론 5선 국회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지낸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이 더 컸다. 이번 위기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권성동은 중앙대 법대 80학번이다. 한 번 더 대입을 치러 서울대에 도전할까도 고민했지만,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받는 중대 장학생을 택했다. 1985년 사법시험 합격의 영광을 누리고 입성한 검사의 길. 하지만 90년대 검찰에서 중앙대 출신은 비주류였다. 출신 학교가 인사에 영향을 준다는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검찰 내에서 이 얘기는 사실상의 금기어였다. 하지만 권성동은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한 자리에선 본인이 스스로 이 얘기를 꺼낼 정도로 소탈했다고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2013년 1월 모습. 중앙포토

“그래 내가 서울대 출신 아니라고 못할 게 뭐 있어? 일 잘하는 거로 보여주면 되는 거 아냐?”라는 식이었다. 직설적이면서도 어려움에 부딪혀보는 성격이 그렇게 발현됐다.

특수부로 발탁된 뒤 성과도 있었다. 1996년 서울지검 특수2부는 서울 시내 재개발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해 23명을 구속기소 했다. 조합 간부들이 건설사와 짜고 공사단가를 올린 뒤 그 이익금을 나눠 갖는 식의 비리였다. 한 조합장 집 장롱에서 만원짜리로 1억3000만원이 감춰져 있던 사실은 대중들의 공분을 샀다. 이때 박주선(현 대한석유협회장) 부장검사의 지휘로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 중 한 명이 권성동이었다. 이후 그는 법무부 인권과(1996~1999), 대검 범죄정보담당관(2003~2005)도 거치는 등 주류로서 이력을 쌓아갔다.

불편한 생각이라도 마음에 감춰두질 않고 솔직하게 얘길 하는 성격이죠. 성과로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정치인으로 유명해진 뒤부터는 그런 직설적 화법이 그를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는 안 좋게 비친 점도 있는 거 같아요. 원래는 정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검사장을 향해 가던 상승 가도에 좌절이 찾아온 건 2005년이었다.

※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까짓 서울대" 당찬 권성동, 그의 운명 바꾼 '스님의 한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7266


최선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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