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요즘 ‘소셜믹스 대표단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이다. 노원구 중계동 불암산 자락, 과거 주소가 산 104번지여서 백사마을이다. 1960년대 청계천·영등포 등에서 살던 철거민을 강제 이주시켜 만든 동네다.
백사마을은 현재 철거 중이다. 최고 35층, 3178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 지난 9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장을 방문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벽 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통합의 상징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왜 백사마을을 사회통합이자 소셜믹스 대표단지라고 명명하는 걸까. 사실 이 마을은 국내 최초 주거지보전사업을 추진했다. 분양 물량은 아파트로 짓되, 임대주택 사업지(전체 대지의 28%)는 옛 동네의 골목길과 자연지형 등을 남긴 채 재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2011년 오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에서 “백사마을은 근대생활사 박물관이며 몽땅 밀어버리는 재개발 방식은 지양하자”며 제안했다. 이듬해 고(故) 박원순 시장 재임 때 서울시는 향후 매입할 임대주택 단지를 저층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했다.
2014년부터 총 10명의 건축가가 임대주택 단지를 맡아 설계했다. 지형과 골목길을 살린, 최고 4층 규모의 집 136채와 마을 공부방 등 공유공간 118곳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좁은 골목길을 그대로 두니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집이 상당했다. 과거 가난했던 사람들의 삶터를 이렇게까지 보전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사비였다. 3.3㎡당 1500만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의 임대주택 매입 단가 대비 세 배 넘는 가격이었다. 평평하게 밀고 새로 짓는 것보다 보전의 비용은 더 비쌌다.
결국 서울시는 주거지보전사업을 철회하고, 임대주택 단지도 아파트로 짓기로 결정했다. 10년가량 이 사업에 발 묶인 채 시간과 비용을 투입했던 건축가들은 갑자기 사업에서 제외됐다.
소셜믹스는 이런 맥락을 덮고 나왔다. 서울시는 최근 모두 아파트로 짓는 백사마을 재개발을 알리며 “분양과 임대 단지가 구분됐던 계획을 소셜믹스 도입으로 입주민 간 위화감도 해소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주거지보전사업이 분양과 임대단지의 갈라치기를 위해 10년 넘게 추진됐단 말인가. 무엇보다 ‘상생형 주거지 재생’이라며 이 실험을 추진한 건 서울시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고, 백사마을의 10년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어떤 시도였고 왜 실패했는지. 실패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