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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후에너지환경부’ 실험, 독일·영국을 보라

중앙일보

2025.09.1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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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에교협 고문·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여당이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업무 대부분을 환경부로 넘기는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환경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돼 자원 및 원전 수출 업무를 제외한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을 가져간다. 에너지 정책 기능이 산업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32년 만이다. 많은 전문가는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 일부 의원들이 에너지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지만, 여당은 오는 25일 국회에서 조직 개편안을 처리할 태세다.

산업부에서 에너지 정책 떼어내
환경에 집착하다 큰 부작용 초래
진흥·규제 정책목표 충돌 피해야

정부조직도 시대 변화에 맞춰 개편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념적 접근과 정치적 결정에 따른 조직 개편안을 공론화 과정도 충분히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밀어붙이면 곤란하다. 그것이 불러올 정책 혼선과 충돌, 비효율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은 분명히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지구촌의 주요 국가들과 보조를 맞춰 추진해야지 우리만 의욕을 앞세워선 곤란하다.

연간 약 60억t으로 한국보다 10배 이상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파라 더 파라)’ 구호 하에 재생에너지를 억제하고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2050년까지 원전 300기 건설을 목표로 제시하고 대규모 원전 증설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섞어 쓴다는 정책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출만 산업부에 존치하고 건설·운영 업무를 환경부로 넘김으로써 사실상 원전 산업에 제동을 걸려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원전은 건설하는데 최소 15년이 걸리고 지을 곳도 없다”고 언급해 ‘제2의 탈원전’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이렇게 간다면 세계적인 ‘원전 르네상스’의 재도래에 역행할 수 있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3대 축 중 하나인 환경에 집착하고, 경제성 및 에너지 안보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해 답답하다. 에너지 진흥과 규제 업무를 한 부처가 담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에너지 진흥은 산업 성장을 촉진하고 투자와 기술 개발 및 공급 확대를 주된 업무 영역으로 한다. 반면 규제는 환경 보호, 탄소 감축, 시장 질서·공익을 우선한다. 한 부처가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담당하면 정책 목표가 충돌하고, 부처 내부의 혼선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당장 발전소 건설이나 전력망 확충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환경 규제로 인해 제동이 걸릴 우려가 크다. 정책의 유기적 연계와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원전 산업에서 그렇다. 원전은 건설부터 운영과 수출, 사용후핵연료 처리까지 유기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건설·운영 따로, 수출 따로라면 심각한 정책 혼선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국내 원전 산업이 환경 규제 강화로 위축되면 수출도 어려워질 것이다.

환경 중심의 에너지 부처 개편 및 편향된 정책이 초래한 실패 사례는 독일과 영국에서 이미 경험했다. 독일은 2021년 산업·에너지·기후를 통합한 ‘경제기후보호부’를 출범했으나, 에너지 비용 급등과 제조업 경쟁력 붕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결국 2023년 기후 기능을 환경부로 환원하고, 경제에너지부를 재출범했다. 영국도 2008년 ‘에너지기후변화부’를 출범한 이후 전력 공급 부족과 도매가격 폭등, 제조업 약화 등의 후폭풍을 겪었다. 2023년에 에너지 안보 중심의 부처로 재편하는 등 구조적 실패를 경험했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 백년대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식으로 바꾸면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큰 경제적 손실을 봤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설계수명이 도래하는 원전의 계속 운영 절차를 밟기는커녕 아직 더 쓸 수 있는 원전마저도 조기 폐쇄했다. 그 결과는 전기요금 인상 압력 증대였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하는 마지막 관문인 국회에서 심도 있는 토론과 검토가 이뤄지길 바란다.

온기운 에교협 고문·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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