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망자는 35만 8400명으로 신생아(23만8300명)의 1.5배이다. 사망이 출생을 추월한 지 5년 지났다.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을까. 가족과 얼마나 대화했을까. 평소에도 가족 간 대화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인이 말기나 임종 상황에서는 좀 달랐을까.
H(63·여)씨는 지난해 초 4기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제주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노래를 같이 부르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달 4일 응급실로 실려갔다. H씨는 딸에게 불쑥 "엄마가 다시 살아나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딸 이모(40)씨는 "엄마 왜 그래"라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챗GPT에 상황 대처법을 물었고, 조언대로 "엄마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았다. H씨는 "울지 마"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씨는 "평소 이런 말을 잘 안 하고 살았는데, 챗GPT가 일깨워줬다. 그간 엄마와 속 깊은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H씨는 11일 눈을 감았다.
연 사망 36만,서툰 말기 소통
'꼭 말로 해야 아나' 풍조 강해
맺힌 것 풀고 가야 모두 편해
의료인이 소통 돕게 수가 필요
연세대 간호학과 박사과정 수료자 전희정씨는 2023년 4월 국제학술지(Supportive care in cancer)에 한국 암 환자 10명의 가족을 인터뷰해 임종 소통 실태를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임종 환자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가족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표현을 절제한다. 80대 암 환자는 아내에게 "이 사람아, 뭘 겁내고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죽어도 자네(아내)는 괜찮아. 연금 다 있고"라고 위로했다.
"내게 섭섭한 거 없어?"
'나쁜 소식 알리기'가 중요하다. 30대 암 환자의 누나는 "마지막인 걸 알렸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기회를 주지 않은 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90대 환자의 딸은 "(엄마가)삶을 정리하고, 나쁜 관계를 풀고 갈 수 있었는데, 암이란 걸 알려주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50대 딸은 어머니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자 "엄마 췌장암이래"라고 알렸다. 그러자 환자는 "그럴 줄 알았다. 그렇지 뭐, 어떡하겠나"며 받아들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인생은 나그넷길, 다 지나간다"고 간접적으로 알렸다.
맺힌 것을 푸는 과정이 말기 소통이다. 젊은 암 환자는 "누나와 아빠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구에 사는 50대 딸은 "엄마, 자식들에게 섭섭한 거 없어?"라고 수시로 물었다.
충분하지 못한 이별
"왜 그때 나한테 그리했냐, 애들한테 당신 왜 그랬어, 이렇게 서운했던 걸 물어봐야 했는데, 이별이 충분하지 못했어요."
70대 아내는 먼저 간 남편을 그리며 이렇게 아쉬워한다. 40대 아들은 "부모님이 맨날 싸웠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좀 풀어주고 가셔야 했는데"라고 말한다.
이별은 피할 수 없는 법. 30대 누나는 "심폐소생술을 안 하기로 하고, 동생에게 '잘 가'라고 했다. 들었는지 동생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귀에 대고 '울지 마'라고 했다"고 전했다. 50대 딸은 "누구보다 열심히 잘 살 테니 내 걱정하지 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한테 가서 아프지 말고 잘 살아. 나중에 나랑 만나"라고 이별을 고했다. 그러자 80대 노모는 눈을 깜빡였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대화 방식을 '맥락 소통'이라 정의한다. 이 교수는 "한국인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꼭 말로 해야 아나, 말 안 해도 미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다 알지 않나, 이런 식으로 주변 맥락에 의존한다"며 "이런 소통법이 말기나 임종기 대화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말기 대화를 제대로 하는 것은 가는 자, 남은 자를 위해 꼭 필요하다. 말하기 힘들면 일본식 엔딩노트 비슷하게 문서로 남겨도 좋다"고 말한다. 엔딩노트에는 삶을 회고하고 정리하는 일기이다.
60대 아내는 남편(70대)과 대화를 잘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논문 저자 전희정씨는 "의료인이 말기 소통을 도우면 좋고, 이들을 위한 지침이 필요하다. 의료인이 환자와 가족을 상담해 소통을 돕는 수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30년 전 헤어진 가족 상봉 도운 의사
의사가 이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영이 강릉아산병원 입원전담전문의는 70대 후반 담도암 환자와 라포(유대 관계)가 형성되면서 환자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0대에 이혼한 후 왕래가 끊겼다는 것이다. 그는 "자녀에게 연락할 면목이 없다. 그냥 떠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종이 얼마 안 남았다. 자녀들이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인천에서 아들과 딸, 전 부인이 찾았고, 오랫동안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 교수는 "환자는 평생의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가족들은 '마지막을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환자는 며칠 후 숨졌다.
삼성서울병원이 발간한 『암치유 생활백과』에 따르면 말기암 환자는 불안하고 두려울 때 자신이나 타인을 비난하지 말고 가족 친구 등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평소 즐기는 모임에 참석하라고 권고한다. 보호자는 환자가 준비되기 전에 대화를 강요하지 말고, 환자의 불안·두려움 표시를 주의 깊게 들어주되 설득하거나 반박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임종이 임박하면 당신이 누구이고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얘기해주면 좋다고 한다. 수시로 환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