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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여당 의원들도 우려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중앙일보

2025.09.17 08:24 2025.09.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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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급히 밀어붙여 유감입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족하면 해상·풍력 육성과 해양 오염 규제 중에 뭘 우선할 건가요? 에너지 패권 경쟁 시대에 산업 경쟁력 핵심인 에너지를 규제 부처인 환경부로 이관하는 건 비현실적 발상입니다.”

국민의힘이 아니라 집권당, 그것도 ‘친명’인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그의 말대로 오는 25일 통과를 앞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이다. 에너지 정책은 나라 산업 성장 전략에 맞추는 것이 정상이다. 이 의원 말마따나 온실가스 감축 등 에너지 규제 부처인 환경부에 산업자원부 소관인 에너지 육성을 맡기는 건 모순일 수밖에 없다. 감사부와 영업부를 합쳐놓으면 회사가 돌아가겠나.

에너지 규제부처 육성 맡는 모순
여당 산자위원들 ‘반대’ 목소리
전기값 폭등 우려…대안 찾아야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지난 11일 한화미래기술연구소를 방문해 태양광 패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본질은 재생 에너지 밀어주기다. 재생에너지도 산림 파괴 등 환경 훼손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환경부가 재생에너지 육성을 맡으면 감시가 제대로 되겠나.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AI) 보급으로 폭증할 전기 수요를 간헐적이고 불안정한 재생 에너지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거다. 생성형 AI는 단순 검색의 3배, 이미지 생성 등 복잡한 작업은 10배의 전력을 소비한다. 또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는 재생 에너지를 아예 쓸 수 없다. 1초라도 전기가 끊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국민은 국민대로 전기 요금 인상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전기 단가는 원전보다 3배 넘게 비싸다. 탈원전을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 초기 4년간 산업부는 “향후 5년간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란 말을 9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러다 정권 말기인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7차례나 올렸다. 인상률이 총 49.4%에 달한다. 문 정부 때 탈원전으로 인한 손실이 47조원에 달한다는 집계도 있다. 그런데도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확정된 원전 2기 신규 건설 재검토를 시사했다. 그가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맡게 되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 뻔하다.

이언주 의원은 “이 문제는 단순한 정치적 지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고도 했다. 정답이다. 에너지를 이념이나 정치에 연결시키는 나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독일은 4년 전 산업·에너지·기후를 합친 경제기후보호부를 출범시켰다가 에너지 비용 급증에 시달린 끝에 지난 5월 기후를 환경부로 넘기고 경제에너지부를 발족시켰다. 영국도 2016년 산업·에너지·탄소 중립을 한 부처로 묶은 뒤 전력 부족에 시달리다 2년 전 다시 분리했다. 프랑스도 지난해 비슷한 방식으로 정부 조직을 개편한 뒤 1년도 안 돼 원상 복귀했다. 폭스바겐·바스프 등 알아주는 독일 기업들이 휘청대는 것도 섣부른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전기 단가 폭등이 핵심 원인 아닌가.

민주당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우려하는 이는 이 의원 혼자만이 아니다. 3일 열린 민주당 정책 의총에서 김원이 산자위 간사를 포함해 민주당 산자위원 전원이 “에너지는 현행대로 산자부가 맡거나 에너지부를 신설해야지, 환경부로 이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노원구청장 시절부터 ‘재생에너지 사회’를 밀어 붙여 온 김성환 환경부 장관의 개인 욕심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민주당 산자위원들은 대통령실에도 이런 의견을 전달했으나 감감무소식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탈원전 한다고 뿌린 태양광 보조금은 ‘안 빼 먹으면 바보’ 소리를 들을 만큼 ‘눈먼 돈’이었다. 2023년 감사원 감사에서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 8곳의 임직원 251명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등록하고 부당 영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 임직원들은 감사 이후 태양광에 손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썼을 정도라고 한다. 소형 태양광발전소 700여 곳 사업자들이 보조금을 더 받아내려고 농업인으로 신분을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산업부 과장급 공무원 2명은 업체의 청탁을 받고 안면도에 국내 최대 태양광 설비가 들어서도록 초지를 잡종지로 유권 해석하는 등 편의를 봐준 혐의로 기소됐다. 한 국립대 교수도 허위 서류로 따낸 풍력 사업권을 되팔아 투자보다 600배 많은 매각 대금을 챙겼다. 이재명 정부에서 이런 부패들이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혁신형 SMR(소형모듈원전) 조감도. 한국수력원자력
이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욕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에너지 대전에 돌입한 AI 시대에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로 전기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에너지부’를 신설해 원전은 늘리고, 재생에너지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은 어떤가.





강찬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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