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의 등장, 인공지능(AI)의 진화, 독자층의 변화…. 급변하는 환경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위기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살아남을 방법은 있다. 디지털 기사 유료화 전환 사업을 정착시킨 뉴욕타임스, 100만 명의 온라인 구독자를 유치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이 ‘생존 모델’로 꼽힌다. 국내에선 중앙일보가 유료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실험을 이끌어 온 한·미·일 언론사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생존 전략을 공유했다. 중앙일보 창간 60주년을 맞아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다. 연사로 나선 한나 포펄 뉴욕타임스 최고데이터책임자(CDO), 와타나베 히로유키(渡辺洋之) 니혼게이자이신문 최고디지털책임자(CDIO), 김영훈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총괄은 “독자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발전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로 미디어의 위기일까. 이에 대해 3사의 판단은 비슷했다. 포펄 CDO는 “뉴스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크지만 독자들을 우리의 웹사이트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수익화로 연결 짓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변화는 쉽지 않았다. 와타나베 CDIO는 “닛케이의 디지털 기사 구독료는 한 달에 약 4200엔(약 4만원)인데, 서비스 시작 전 미디어 전문가와 컨설턴트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그 돈 내고 기사 보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는 혹평이 돌아왔다”고 했다.
3사는 독자들의 충성도를 층위별로 나누고, 이른바 ‘무관심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포펄 CDO는 “과거 뉴욕타임스는 직접적인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소셜미디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최근엔 틱톡 등으로 뉴스 채널을 다각화하고 있다”며 “트래픽 증가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사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습관을 들인 독자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와타나베 CDIO는 “TV 광고 등으로 브랜딩을 강화하는 한편, 사용자 환경(UI)을 최적화한 애플리케이션으로 독자들이 기사를 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포펄 CDO는 “무료로 볼 수 있는 기사 수를 늘려 독자가 직접 콘텐트의 질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자사 유료 구독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독자의 만족도를 높인 것도 공통점이었다. 김 총괄은 “예컨대 교육 콘텐트인 ‘헬로! 페어런츠’의 경우 기사와 함께 구독자에게 온라인 컨퍼런스, 글쓰기 교실 등을 열고 연재물을 묶은 피디에프(PDF) 파일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CDIO는 “우리는 자사가 갖고 있는 조간·석간 신문뿐 아니라 잡지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또 “‘애스크(Ask·물어봐라), 닛케이’ 서비스를 통해 AI가 과거 닛케이 기사를 바탕으로 쉽게 기사를 해설해 주고 있다”며 다양한 AI 활용법도 소개했다.
기술 발전이 언론사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포펄 CDO는 “언론사와 기자가 저널리스트, 편집자로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AI 시대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지금의 환경 변화로 언론이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심층적인 독자들을 늘리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국내 주요 종합일간지와 통신사 발행인 10명, 온라인신문협회에 소속된 19개 언론사 관계자들이 자리해 한·미·일 주요 언론의 전략을 살폈다. 미디어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도 다수 참석했다. NOL 인터파크를 통해 판매한 102석 분량의 티켓은 매진됐다.
컨퍼런스 이튿날인 18일은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글로벌 리더들이 강연에 나선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과 마크 톰슨 CNN 최고경영책임자(CEO)가 ‘하이브리드 시대,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대담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든 매기 강 감독, K콘텐트의 가치를 알린 봉준호 영화감독과 이수만 A2O 엔터테인먼트 키 프로듀서 등도 연사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