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극진한 대접에 “진정으로 내 인생 최고의 영예”라며 “국왕과 영국에 대해 수십년간 큰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환영식 의장대 사열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걸으라’는 손짓을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은 찰스 3세보다 앞서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이동 때는 영국의 국왕이 의회 개원식 때 사용하는 금으로 도금된 ‘아일랜드 국가 마차’를 내줬다.
반면 국빈방문 내내 런던 시내 곳곳에선 수천명의 시위대가 운집해 “트럼프 반대”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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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차례 국빈방문 내가 마지막이길”
찰스 3세는 이날 윈저성 세인트 조지홀에서 주최한 국빈만찬에서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두번째 국빈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며 “이 특별하고 중요한 일(국빈방문)은 우리 두 위대한 나라간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재가 유럽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우리 두 나라는 중대한 외교적 노력에 협력하고 있고, 특히 대통령님은 세계의 가장 다루기 어려운 몇몇 분쟁의 해법을 찾는 데 개인적인 헌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기분이 좋아진 트럼프 대통령은 찰스 3세에게 “아주,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며 “외국 정상으로 두 차례 영국을 국빈 방문한 것은 내가 처음인데, 내 사례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에 좌중의 웃음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미·영)는 하나의 화음 속 두 음과 같이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함께 연주돼야 한다”며 “양국간 관계와 정체성의 유대는 소중하고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외교무대에서 돌발적인 발언과 행동으로 주목을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날은 사전 대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격식을 지켰다. 이에 대해 영국 언론은 “스타머 정부로선 안도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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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알콜’ 트럼프에 위스키…“더 나아갈 수 있다”
서로에 대해 격식을 차리는 중에도 일부 눈에 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육·해·공군과 왕립해병대 등 1300여명의 병력과 120필의 말이 도열해 있던 환영식에 지각했다.
당초 12시 정각에 착륙할 예정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 헬기는 12시 10분께 상공을 선회하더니 12시 16분쯤 착륙했다. 12시 2분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던 찰스 3세 부부는 10분 넘게 트럼프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려야 했다.
환영식에 늦게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윌리엄 왕세자 부부에게 다가간 뒤 캐서린 왕세자비에게 악수를 청하며 “당신은 정말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는 직설적 표현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옆에 있던 윌리엄 왕세자는 웃음으로 넘겼다.
찰스 3세는 국빈만찬 건배사를 통해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언급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만찬 메뉴엔 조니워커 블랙 위스키에 마멀레이드를 더한 위스키가 올랐다. 위스키의 이름은 ‘대서양 횡단 위스키 사워’로 명명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평소엔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와 콜라를 즐긴다. 영국 왕실은 그럼에도 위스키 외에도 47대 대통령으로 재선된 트럼프 대통령의 45대 첫 임기를 기념하는 의미의 1945년 빈티지 포트 와인과 트럼프 대통령 모친의 출생 연도를 기념한 1912년산 코냑 그랑 샴페인 등을 만찬주로 준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스코트랜드 위스키에 부과한 10% 관세를 철폐하기 위한 노림수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만찬장에서 찰스 3세 등 내빈들의 잔에는 와인으로 추정되는 노란빛의 음료가 채워져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투명한 음료가 든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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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엔 反트럼프 시위대 5000명 운집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 일정이 진행된 윈저 일대엔 철제 장벽이 설치됐고, 인근엔 트럼프의 지지자와 반대자들의 간헐적 시위가 진행됐다. BBC는 “수년간 윈저성에서 많은 국가수반과 고위급 사절단이 다녀갔지만 이같은 수준의 보안은 본 적이 없다”고 짚었다.
대규모 시위는 윈저성에서 동쪽으로 30㎞ 가량 떨어진 런던 도심에서 열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는 약 50대 단체에서 최대 5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트럼프를 저지하라”, “이스라엘 무기 제공 중단”, “전쟁, 인종주의, 기후 혼란, 자본주의에 아니오(NO)를”, “파시즘과 싸움” 등이 쓰인 다양한 팻말을 들고 도심 거리를 행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주황색 아기 모습으로 희화화한 풍선도 여러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