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핵무기를 보유한 파키스탄과 17일(현지시간) 어느 한 국가가 무력 침공을 받으면 다른 국가가 군사 지원을 하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의 중동 내 노골적인 패권 추구로 미국의 안보 보장마저 흔들리자 사우디가 파키스탄과 군사 동맹까지 맺으며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날 사우디를 국빈 방문 중인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함께 수도 리야드에서 상호방위조약 체결식을 열었다.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공동성명문을 통해 “양국 간 방위 협력을 발전시키고 모든 침략에 대한 공동 억지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한 국가에 대한 모든 침략은 양국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고위 관리는 로이터에 “이번 협정은 모든 군사적 수단을 포괄하는 방위 협정”이라며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가 사우디에 핵우산으로 제공될 가능성도 열어뒀다.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7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상호방위조약은 각각 역내 경쟁자를 둔 사우디와 파키스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 먼저 사우디는 2023년 10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줄곧 ‘중동의 맹주’ 자리를 위협받아왔다. 중동의 유일한 비공식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진 팔레스타인은 물론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까지 공격하며 주변 국가들과의 무력 충돌을 불사해왔다.
특히 지난 9일 이스라엘의 카타르 기습 공습은 중동의 안보를 보장해온 미국의 암묵적인 약속에 대해 중동 국가들의 믿음을 흔들었다. 미국은 동맹국인 카타르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은 사전에 “몰랐다”고 했지만, 하마스 제거를 위한 공습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우디 고위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특정 국가나 특정 사건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수년간의 논의 끝에 나온 것”이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의 연이은 무력행사가 협정 체결의 트리거(방아쇠)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동의 아랍·이슬람권 국가 정상들은 지난 15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 모여 “이스라엘은 주변과 평화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의지만 강요하려고 한다”며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향한)이스라엘의 공습을 막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며 “그 사이 고삐 풀린 이스라엘이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 또한 국경을 두고 분쟁을 이어가는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가 필요한 상황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지난 4~5월 국경인 카슈미르에서 미사일까지 동원한 무력 충돌까지 벌였다. 파키스탄은 또 지난해 7월에는 종파 분쟁으로 이란과도 충돌하는 등 주변국들과 계속 긴장 상태다.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적 협력을 이어왔고,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후 함께 이란을 견제하면서 우방국으로 관계를 발전시켰다. 파키스탄 국민 약 250만명이 사우디에서 일하면서 사우디의 노동 시장을 뒷받침하고 있고, 사우디는 주요 석유 공급국으로 파키스탄의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그동안 미국의 우방국인 걸프 국가들이 안보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해왔다”며 “이번 협정은 중동 지역의 기존 전략적 계산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