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년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담뱃잎이 지구를 지배했다. 이제 담배 제국이 흔들린다.
지난 8월 22일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1000억원 규모의 파기환송심에서 국세청이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승소했다. 국가의 과세주권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다. 이는 또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담배 전쟁’의 한 국면이다.
담배 기업들이 세계 각국에서 잇따라 고전하고 있다. 올해 초 JTI는 캐나다 정부와 237억 달러(약 32조원) 규모의 합의에 도달했다. 흡연 관련 질병으로 인한 정부의 보건의료비 손실과 흡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포함한 금액이다. 2023년 BAT에 네덜란드 정부가 1억700만 유로(약 1700억원), 미국 정부가 5억800만 달러(약 7030억원)의 벌금을 부과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각국 정부의 담배 산업 규제와 조세 강화에 따라 글로벌 담배 회사들의 전통 궐련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담배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 궐련 판매량은 2021년부터 4년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2024년 판매량은 28억7000만 갑으로 전년 대비 4.3% 줄었다.
담배 제국의 사활을 건 반격이 시작됐다. 16세기부터 축적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이들은 전자담배라는 새로운 전장으로 전면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1위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는 2030년까지 궐련 생산을 전량 전자담배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BAT의 목표는 2035년까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전자담배로 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인가. 2005년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가입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 체계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보건의료계와 시민단체들은 글로벌 담배 산업의 이른바 ‘기술 혁신’과 ‘사업 전환’을 우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규제의 허점은 담배 기업들이 ‘규제 차익(regulation arbitrage)’을 노릴 기회다. 규제 차익이란 국가마다 다른 규제 환경을 이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엄격한 규제를 피해 느슨한 규제 지역으로 사업을 이동시키거나, 규제 공백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이다. 담배 기업들은 이 전략의 달인이다. 선진국에서 담배 광고가 금지되자 개발도상국을 공략했고, 궐련 규제가 강화되자 전자담배로 영역을 확장했다. 한국의 전자담배 규제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골드러시’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이 규제 차익의 각축장이 되지 않으려면, 사법·입법·행정부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