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초·중·고교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비롯한 스마트기기 사용이 금지된다. 미국·영국·호주 등에서는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할 뿐 아니라, 14세까지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스마트폰 없는 어린 시절(Smartphone Free Childhood)’ 운동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영국의 명문 이튼 칼리지는 학생들이 통화·문자 전용 휴대폰만 반입할 수 있도록 한다.
삶의 통제권 침해받기 싫어하는
신기술 능숙한 20~30대가 주도
윤리적이고 환경·건강에도 도움
2022년 뉴욕에서는 디지털 기기로부터의 자유를 원하는 고등학생들이 러다이트 클럽(Luddite Club)을 결성해 화제를 낳았다. 문자보다 통화를, 온라인 공간보다 동네 공원에서의 만남을 선호하는 이들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하거나 스마트폰을 처분하기도 한다. 지금은 미국 전역의 고등학교와 대학으로 확장해 현실 세계의 삶을 회복한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다.
생성형 AI 의도적으로 회피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의 폭발적 성장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AI로 인한 혜택이 부작용보다 크다고 응답한 비중은 10%에 그치고 부작용이 더 크다고 응답한 비중은 52%에 달했다. 동물성 식품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처럼 생성형 AI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AI 비거니즘(AI Veganism)도 등장했다. 기술 접근성과 역량의 차이에서 비롯된 디지털 격차 문제와 달리, 신기술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하는 20대, 30대가 주도하는 AI 비거니즘의 부상 배경은 윤리·환경·건강 차원에서 설명된다.
채식주의자들이 동물 학대를 우려하듯 AI 비건은 창작자의 권리에 주목한다. AI 모델이 콘텐트를 창작자의 동의 없이 이용하는 문제는 2023년 미국작가조합이 장기 파업을 벌였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서도 웹툰 작가의 56%가 AI가 창작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미국 출판업계는 인간이 저술했음을 보장하는 공식 인증(Human Authored)을 도입하기도 했다. 저작권 침해는 개인 창작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뉴욕타임스·아사히신문은 기사 무단 이용을 이유로 오픈AI, 퍼플렉시티에 소송을 제기했다. 디즈니·유니버설은 AI 기반 이미지 생성 기업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 중이다.
지나친 육식이 대량 사육으로 인한 산림 파괴, 메탄 배출 등 환경 문제를 일으키듯 생성형 AI 사용 증가는 전력과 물 소비 급증에 관한 우려를 낳는다. 챗GPT는 구글 검색보다 10배 이상 전력을 소모하고, 웹 검색과 AI 기능이 통합되면 전력 소모량은 대폭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구글의 2025년 전력 사용량이 5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도 AI 사용 확대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젊은이들은 AI 사용 자제, 미사용 데이터(dark data) 삭제, 과다 기능 제품 불매운동 등 실천 방안을 공유하기도 한다.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도 빼놓을 수 없다. 디지털 과몰입이 집중력 저하, 우울 증세를 부르고 AI가 인지적 기능을 저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카네기멜론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생성형 AI를 자주 사용하는 지식 노동자는 비판적 사고를 사용할 가능성이 떨어졌다. MIT 미디어랩의 2025년 실험에서도 챗GPT로 글을 작성한 그룹의 뇌 활동이 직접 창작한 그룹보다 현저하게 둔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멍청이폰’ 등 단순 피처폰 재출시
기술 과의존에 대한 우려와 저항은 대체 기기, 디지털 프리 서비스 등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 스마트 기능을 최소화한 덤폰(dumb phone)이 대표적이다. 멍청이폰을 뜻하는 덤폰은 통화와 문자, 음악 재생 등 기본 기능만 갖춘 피처폰이다. HMD 글로벌은 단종됐던 노키아의 플립 모델을 재출시했고, 라이트폰(Light Phone), 펑크트(Punkt) 등도 디자인과 기능의 단순성을 강조한 제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포천에 의하면 2025년 덤폰 시장 규모는 101억 달러로 전망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던 아프리카·인도 시장의 비중은 꾸준히 줄고 미국·영국에서의 판매는 늘어나는 추세다.
여행업계에서는 디지털 디톡스가 키워드로 부상했다. 힐튼이 실시한 글로벌 소비자 조사에서 4분의 1이 여행 중 디지털 기기와 소셜미디어 사용을 과거보다 줄였고 17%는 디지털 프리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찾는다고 응답했다. 영국의 언플러그드(Unplugged), 이탈리아의 로그아웃 리브 나우(Logout Live Now)는 노 와이파이 객실,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을 제공해 방문객이 자연과 휴식에 집중하고 건강한 디지털 생활을 계획해보도록 한다.
레트로, 슬로우 라이프의 확산도 더욱 빨라졌다. 최근 미국에서는 1990년대 살림의 여왕으로 불리던 마사 스튜어트의 스타일이 2030 세대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25년 핀터레스트의 ‘마사 스튜어트 미학(Martha Stewart Aesthetic)’ 검색량이 전년 대비 2899% 증가할 정도다. 아날로그 시대를 상징하는 꽃무늬 커튼, 수제 베이킹, 손글씨 카드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일시적 현상 치부 말고 대응해야 정보력으로 무장하고 자기애가 강한 오늘날 젊은이들은 첨단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는 동시에 그로 인한 위험에 여느 세대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디지털 과몰입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디지털 다이어트와 같은 절제를 실천하며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도 많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환경·윤리 문제 우려에 일자리 상실의 두려움이 더해져 빅테크 기업에 대한 불신과 반감도 크다. 신기술을 가장 먼저 수용하며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기술로부터 삶의 통제권을 침해받기 싫어하는 까다로운 고객이다. AI 비거니즘, 디지털 디톡스의 부상을 일시적이거나 주변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 이들이 추구하는 미래 시장의 모습을 그려보고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