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거미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복잡한 이해관계, 부처 간 입장 차이 때문에 거미줄처럼 규제들이 얽혀 있는데, 이런 거미줄 규제를 과감하게 확 걷어내자는 게 이번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나흘 전(15일) 제1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다. 조만간 정부 차원의 규제 개혁 청사진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거미줄 규제’ 언급
역대 정부 슬로건 요란했으나
성과는 미미해…핵심은 ‘체감’
이 대통령이 지적한 거미줄 규제는 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이중삼중으로 가로막혀 있는 법령·규정 난맥상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주로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 로봇 같은 신산업에서 나타난다. 관련 부처도, 이해관계자도 겹겹이다. 미래 먹거리의 전후좌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장애물 같다. 이럴 땐 시행 세칙과 처벌 조항을 틀어쥔 공무원이 왕 노릇을 한다. 여기저기 눈치 봐야 하는 기업들, 특히 갓 창업한 스타트업 입장에선 한 걸음 떼기도 어렵다. 이 대통령이 이런 거미줄을 걷어내는 데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거미줄’이라고 한 건,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 의지를 드러내는 단골 장면 같아서다. 멀리 봐서 김영삼 정부 이래로 ‘규제 완화’ 나아가서 ‘규제 파괴’를 외치지 않은 정권이 없다. 행정쇄신위원회(김영삼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김대중 정부) 같은 조직도 가동 중이다.
대개는 당선인 시절, 또는 정권 초기에 규제와 전쟁을 선포하니 당연히 힘이 실렸다. 이때마다 슬로건은 단호했다. 어떨 땐 요란했다. 낡고 복잡한 규제 조항을 ‘전봇대’(이명박 정부), ‘손톱 밑 가시’(박근혜 정부), ‘붉은 깃발’(문재인 정부), ‘모래주머니’(윤석열 정부)라고 부르며 철퇴를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강렬하면서도 상징적인 비유로 정권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 ‘규제 기요틴(단두대)’이라는 원색적인 표현도 마다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신발 안 돌멩이’는 정권을 바꿔가며 재활용(?)됐다. 박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인들과 만나 “먼 길 좋은 구경 간다고 해도 신발 안에 돌멩이가 있으면 힘들어서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2013년 1월 인수위원회 전체 회의)고 했다. 윤 전 대통령도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2022년 3월 당선인 시절 페이스북)고 약속했다. 자그마치 30년 넘게, 그것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 개혁을 외친 것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시동을 걸었는데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역효과를 낸 경우도 꽤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대학 설립요건을 완화했으나 부실대학이 난립하면서 골칫덩이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 철폐를 추진했는데 ‘지방 몰락’을 불렀다며 지금도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김대중 정부 때 규제 50% 감소·완화를 성공 사례로 꼽는다. 그러면서도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와중이라 과감한 개혁이 가능했다”고 꼬리표를 붙인다. 최근엔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청와대와 국회를 문지방 닳도록 뛰어다니면서 ‘규제 샌드박스’(한시적 규제 유예)를 도입한 게 떠오른다.
규제 개혁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는 정책 수요자에게 물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경제단체 임원 A씨의 일갈이다.
“정부 발표를 보면 분명히 ‘규제 숫자’는 급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해결된 건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규제 조항에 A·B·C 조건을 ‘세트’로 묶는 것이다. 이러면 전체 숫자는 줄겠지만 내용은 전혀 바뀌는 게 없다. 아니,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손톱 밑 가시도 불편한데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라는 격 아니냐.”
재계는 이재명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애초부터 의구심이 짙었다. 게다가 정권 초기 ‘친노동 드라이브’에 기를 빼앗긴 상태다. 줄곧 반대해온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더 센’ 상법이 속사포처럼 통과됐다.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연 3명 이상 발생하면 영업이익의 최대 5%, 최소 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제재 위주의 대책도 나왔다. 대출이나 투자 유치도 제한받고, 보험료도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거미줄 규제’ 혁파를 꺼냈다. 어느 정권보다 실용과 정책 추진력을 내세우고 있으니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규제 개혁은 무엇보다 기업과 소비자가 체감해야 한다. 그래서 성과로 얘기해야 한다. 추진 동력과 속도가 생명이다. 지체되면 갖가지 저항에 가로막힌다. 기업과 소비자가 체감하는 성과 없이는, 이재명 정부도 규제 개혁 레토릭(수사)으로 백일장만 했다는 쓴소리를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