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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트럼프는 ‘반한’이 아니라 ‘반전략적’이다

중앙일보

2025.09.18 08:29 2025.09.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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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미 이후 조지아주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체포돼 범죄자처럼 쇠사슬에 묶인 모습을 보며 많은 한국인은 당연하게도 분개했고, 아마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한(anti-Korean)’이어서가 아니라 ‘반전략적(anti-strategy)’이어서 생긴 일이다.

‘대(大)전략’을 추구하는 강대국은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상충하는 목표를 조정한다. 1947년 미국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설립해 국무부·국방부·재무부·중앙정보국(CIA) 수장 간의 조율을 통해 국가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대통령에게 조언하도록 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NSC 선임보좌관이었던 필자의 주 임무는 통상·인권·비확산·국방 담당자들과 조율하거나 논쟁하면서 대통령에게 정책의 선택지를 제공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부처 정책조율에 무관심
조지아 구금 사태의 근본 원인
소통 채널 구축해 재발 막아야

트럼프는 재집권 후 이런 정책 조율 과정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지속적으로 여러 상충하는 공약을 내세웠고 이기기 위해서 이런 약속을 계속 뒤집었다. 전략적 사고를 하는 지도자라면 참모나 동맹국에 혼란을 주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겠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이를 활용해 상대가 자신의 속내를 계속 추측하도록 만들어 정치적 성공을 거둬왔다. 개인적으로 권력을 쌓는 유효한 수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미국의 힘은 명백히 훼손되고 있다.

이런 부조리한 행태에 당황한 미국의 동맹이나 파트너국은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트럼프 1기에서는 인도와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또 인도계 미국인 유권자를 의식해 트럼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달 50%의 고율 관세를 인도에 부과했다. 표면적으로는 인도가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파키스탄·인도 분쟁 중재에 나선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파키스탄에 힘을 보태지 않은 모디 총리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어느 정도 외교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가 인도·파키스탄 분쟁을 종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사 그렇다 해도 모디 입장에서는 국내 반발이 뻔한 상황에서 트럼프에게 공을 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NSC와 국무·국방장관이 인도와의 관계 회복에 나서야 했지만, 실세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밀러는 광적으로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며 인도계 미국인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결국 미국과 인도의 관계는 최근 30년 동안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조지아주 사태도 밀러의 작품이다. 지난 6월 밀러는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일일 체포 이민자를 3000여명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밀러의 극단적인 명령에 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불법 체류 근로자를 대규모로 체포할 가능성이 높은 유통 채널인 홈디포나 조지아주 공장 같은 생산시설을 급습하는 것이다. 이 공장은 완공되면 8000개의 일자리를 만드는데도 ICE는 그저 좋은 표적으로만 본 것이다.

ICE는 상무부나 재무부, 공화당 소속인 조지아 주지사나 NSC, 국무부 등과 대미 투자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의 훼손 가능성에 대한 어떤 협의도 없이 공장을 급습했다. 이번 사태로 밀러는 반이민 ‘마가(MAGA)’ 지지자들이 환호할 만한 이미지를 얻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외 투자자들과 동맹국 한국의 미국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승절 열병식을 통해 중국의 패권 야망을 보여주는 마당에 트럼프는 관계를 강화해도 모자라는 인도와 한국에 모욕을 안겨준 것이다.

트럼프가 이런 실책을 반성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외부 요인으로 앞으론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의 관세·이민 정책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으로 인해 미국인에게 인기가 없다. 미 국민과 의회는 동맹국과 인도를 중요시한다. 한·미는 지난 8월 정상회담의 정신을 되살려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소통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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