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같은 부동산 대출보다 기업대출 등 생산적 금융에 돈을 더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자본 규제를 대폭 손질한다. 19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제1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주재하고 이 같은 내용의 자본 규제 개선 방안을 내놨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을 준수해야 한다.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로 산출한다. 이때 위험가중자산은 은행이 가진 대출·채권·주식·펀드 등 자산을 위험도에 따라 가중치를 둬서 재산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위험도가 높은 주식은 반영 비중을 높이고 안전한 담보 대출 등은 비율을 낮게 잡는 방식이다. BIS 비율을 준수해야 하는 은행은 이런 자본 규제 때문에 안전한 주담대를 더 취급하고, 위험한 기업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은행권 자본이 부동산 시장에만 과도하게 흘러간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기업대출 같은 생산적 분야에 좀 더 자본을 쓸 수 있게 위험가중자산의 평가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우선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을 현행 15%에서 20%(해당 자산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위험가중자산으로 계산)로 높인다. 다만 금융사 급격한 부담을 막기 위해 신규 대출 분부터 바뀐 규정을 적용한다. 반면 주식의 위험가중치는 현행 400%에서 250%로 크게 낮춘다. BIS 기준에서 주식의 위험가중치는 원래 250%가 원칙이었다. 하지만 국내 규정은 이보다 보수적 기준을 적용했었는데, 이번에 BIS 기준에 맞춰 낮추기로 했다. 대신 단기매매 목적으로 3년 이내 매도하는 비상장주식이나 가격 변동성이 큰 벤처 주식은 기존처럼 위험가중치를 400%로 적용한다.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한 펀드에도 이런 주식의 위험가중치 변화(400→250%)를 그대로 적용한다. 더 나아가 ‘위험가중치 100% 특례’를 받는 펀드 요건을 명확히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만들기로 했다. 현재 정부 지원을 받는 정책 펀드는 위험가중치를 100%로 낮추는 특례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해당 특례를 적용받으려면 펀드별로 사전 심사를 거쳐야 했다. 앞으로는 미리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맞으면 특례를 바로 적용한다. 금융당국은 이런 자본 규제 개선을 위해 내년 1분기 중으로 관련 시행세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금융위 자체 계산에 따르면 자본 규제 개선으로 국내은행의 BIS 총자본비율은 약 0.24%포인트 상승한다. 현재는 15.95%(올 6월 말 기준)다. 이번 대책으로 BIS 비율이 올라가면 은행이 추가로 쓸 수 있는 자본이 약 31조6000억원 더 생긴다. 기업대출 위험가중치가 평균 43%임을 고려하면, 늘어난 자본 여력을 모두 기업대출으로 돌리면 약 73조5000억원까지 관련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
보험업권 자본 규제 개선도 추진한다. 보수적인 위험 측정 방식을 수정하고, 자산·부채 현금흐름 매칭을 조정해 국채 대비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를 늘리는 방식이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10월 중 나온다.
이밖에 금융위는 금융사의 과도한 위험 회피 성향을 막기 위해 위험 자산 투자에 따른 검사·감독을 면책하고, 금융사 내부 평가 지표인 핵심성과지표(KPI) 항목도 개선하기로 했다. 또 앞서 발표한 150조원 ‘국민성장펀드’를 올해 12월에 출범시켜 인공지능(AI)·반도체·게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150조원 펀드의 상징이 될 만한 메가 프로젝트도 발굴하기로 했다.
이 위원장은 “국가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금융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장을 주도해 재도약하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