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20일)였다. 위대한 클레이튼 커쇼(37)가 다저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공을 던졌다.
태평양 건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본 나고야에서 한 선수의 은퇴 경기가 열렸다. 주니치 드래곤즈의 소부에 다이스케(38)라는 투수다.
커쇼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별은 아니다. 12년간 선발 등판은 없었다. 500경기 대부분을 중간 계투로 뛰었다.
은퇴 인사를 하는 자리다. 나고야돔에 마련된 무대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독특한 인사말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주니치 구단과 (상대팀) 야쿠르트, 마지막까지 남아준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12년간 신세를 졌다.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여기까지 왔다. 그 시간이 내게는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여기까지는 멀쩡하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다. 코믹하고, 소탈한 캐릭터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은퇴사가 적힌 종이를 잃어버렸다. 지금 머릿속이 하얗다. 사실 울 준비를 했는데, 놀라서 눈물도 나지 않는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제 야구와는 이별이다. 무척 슬프지만, 더 이상 눈으로 레이저를 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는 눈빛으로 유명하다. 마운드에서 타자를 죽일 듯이 쏘아보기 때문이다.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는 것 같다는 의미로 ‘안광(眼光) 빔’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은퇴사의 백미다.
“(친한 동료들) 오노 유다이, 다지마 신지, 다카하시 슈헤이와 우승하고 맛있는 술을 마시자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특히 정든 라커룸을 떠나야 한다는 게 슬프다. 무엇보다 오노 녀석의 방귀 냄새를 더 맡을 수 없다니 눈물이 날 것 같다.”
나고야돔이 빵~ 터진다.
주니치 드래곤즈 SNS
이날 마지막 등판은 한 타자만 상대했다. 야쿠르트의 나카무라 하루카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승부했다. 내내 주무기로 삼던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영락없이 쳐내더라. 좀 더 빠지는 코스를 택해야 했나? 아니다. 그래도 맞았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공은 그에게 돌아왔다. 평생 간직해야 할 기념구다. 그런데 그걸 관중석으로 던져 버린다.
“(안타 맞은 게) 억울해서 그랬다. (웃으며)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팬 여러분이 더 아끼고 잘 간직해 주실 것 같아서 선물한 것이다.”
은퇴식 끝까지 웃음 코드를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 헹가래 장면이다. 빨리 들어 올려 달라며 자신이 먼저 땅에 눕는다. 그러나 선수들이 못 본 체한다. 모두들 돌아서 벤치로 향한다.
“눈치는 챘다. 어쩐지 분위기가 약간 이상하더라. 선수들이 헹가래도 안 치고 그냥 벤치로 돌아가려고 하길래 일부러 바닥에 누웠다.”
물론 헹가래는 이뤄진다. 동료들이 곧바로 돌아와서 힘껏 하늘로 올려줬다. 못 본체 한 것은 맞춤형 의식이다. 이를테면 첫 홈런에 대한 무관심 세리머니 같은 장난이었다.
주니치 드래곤즈 SNS
주니치 드래곤즈 SNS
별명은 할아버지다. 이름 소부에(祖父江)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약간 엉성한 수염을 기르고 다닌다.
주니치의 본거지인 아이치현(나고야) 출신이다. 태어나서 초-중-고-대학까지 외지로 나간 적이 없다. 심지어 사회인 야구도 이 지역 팀(도요타)을 선택했다.
2021년에는 FA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내 사랑은 아이치현”이라며 잔류를 택했다. 연봉 1억 엔(약 9억 4000만 원)의 조건이었다. 전년보다 3000만 엔 인상된 액수였다.
12년 간 509게임에 나가 500이닝을 던졌다. 17승 27패, 12세이브, 153홀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ERA)은 3.04다.
투수로는 크지 않은 체격(175cm, 75kg)이다. 몸집이 작아 중학교 때 팀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을 붙잡고 훈련을 계속했다. 결국 고등학교 때 다시 야구부 테스트에 합격했다. 프로 입단 후 최고 152km의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가 됐다.
은퇴 후 계획에도 그 얘기를 잊지 않는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아버지 덕분이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 천천히 캐치볼이나 같이 하고 싶다.”
끝으로. 고상하지 못한 단어 ‘방귀’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오노 그 녀석 마음이 약하다. 눈물도 많다. 아무래도 오늘 또 울 것 같더라.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웃으라고 한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