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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이란에는 제재 복원…중동 긴장 격화

중앙일보

2025.09.20 23:09 2025.09.2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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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에 잇달아 찬성 의사가 나오고, 이란 제재는 복원 수순에 돌입하는 등 서구의 압박이 거세진 상황에서도 중동의 당사국들은 정면돌파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 기조를 밀어붙이고 있고,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 중단을 선언했다. 압박과 맞대응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가자지구부터 홍해와 호르무즈에 이르는 ‘중동의 화약고’ 지역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고층 건물과 거리.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판 여론은 고립을 우려해야 할 수준으로 번졌다. 이스라엘이 휴전을 거부한 채 하마스를 향한 공세를 지속하자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서구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카드로 꺼내들고 이스라엘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실제 오는 23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제80차 유엔 총회 고위급 회의를 앞두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을 공언하는 국가들이 속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벨기에, 포루투갈 등 10개 국가는 이번 유엔 총회를 계기로 이 같은 승인 의사를 밝힌다는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이 승인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의 안전과 평화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포괄적 평화 계획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를 독립국으로 인정해 공존을 추구한다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은 이미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140개 이상 국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결사 반대하는 이스라엘로선 다시 한 번 외교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고립을 감수하더라도 강경 노선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일종의 고립 상태에 직면해있다”며 “그 상태가 수년간 이어질 수 있어 스스로 버텨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마스 궤멸을 위한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며 이스라엘판 ‘자력갱생’까지 시사한 셈이다.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의 클레베르 광장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로 숨진 팔레스타인인을 상징하는 신발이 놓여져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주간 진행되고 있는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 대한 공세도 격화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보건 당국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이날 이 지역 지하시설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최소 6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약 보름 동안 가자시티의 고층 건물 최대 20동을 파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남은 이스라엘 인질 47명의 신변 이상을 거론하며 경고에 나섰다. 하마스가 이날 공개한 포스터에는 인질 47명의 얼굴과 함께 “가자시티 군사작전이 시작된 데 따른 작별 사진”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용인을 바탕으로 국제적 고립을 극복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친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반대하고 있고, 하마스의 인질 위협에 대해선 “무엇을 자초하는지 알길 바란다”는 경고로 이스라엘 행보에 힘을 싣기도 했다.

서구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 건 이란도 마찬가지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는 20일 “IAEA에 협조하는 길은 사실상 중단됐다”고 밝혔다. 전날 유엔 안보리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제재 종료를 유지하는 결의안을 부결시킨 데 일종의 보복조치다.

해당 부결은 2015년 이란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기로 한 ‘이란 핵 합의(JCPOA)’ 서명국 E3(영국·프랑스·독일)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E3는 이란이 IAEA 사찰관의 핵시설 방문을 허용하지 않은 점, 미국과의 핵 협상에 응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제재 자동 복원을 의미하는 '스냅백'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미르사에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가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란에 대한 제재 종료를 유지하는 결의안 표결 후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이란은 지난 수개월간 진행한 IAEA와의 협력 노력이 유럽의 제재 복원으로 훼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IAEA와 협력해왔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안을 제출했음에도 유럽 국가들이 이렇게 (제재 복원으로)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 잠시 타협점을 찾은 것처럼 보였던 이란 핵문제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이란 입장에선 레바논·시리아·예멘과 같은 역내 네트워크를 규합해 반(反)서구 기조를 강화할 유인이 커진 것이다.





이근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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