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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둘 동시에 덮쳐 100억 삼켰다…남해 통곡, 무슨 일 [이슈추적]

중앙일보

2025.09.21 00:47 2025.09.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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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이 ‘바다 저승사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6년 만에 들이닥친 ‘붉은 재앙’ 적조와 여름철 단골 불청객인 ‘죽음의 물’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덩어리) 때문이다. 두 저승사자가 덮치면, 양식장에 가둬 키우는 어패류는 도망칠 곳 없이 ‘질식사’한다. 여기에 고수온 추정 피해까지 발생했다. 8~9월 사이 남해안 곳곳에서 이들 어업 재해(災害)가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발생하면서 어민들 근심이 깊다.

연일 적조가 이어지는 지난 1일 오후 경남 남해군 미조면 한 항구에서 집단 폐사한 참돔의 수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붉은 재앙’ 덮친 양식장…“추석 앞두고 떼죽음”

21일 경남도에 따르면 통영·사천·거제·고성·남해·하동 앞바다에서 양식 어류 281만3800마리(19일 기준)가 적조로 폐사했다. 넙치, 참돔·돌돔·감성돔·우럭·쥐치·숭어 등 피해 어종(魚種)만 13종이다. 종류 상관없이 떼죽음을 당했단 얘기다. 현재 남해안에 퍼진 유해 적조 생물인 ‘코클로디니움’은 생선 아가미에 들러붙어 호흡을 어렵게 해 폐사하게 한다.

지난달 26일부터 집계된 경남의 적조 피해액은 59억5500만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2000년대 들어 경남에서 발생한 두 번째로 큰 적조 피해가 될 전망이다. 지금껏 2500만 마리가 폐사(피해액 216억원)한 2013년 피해가 2000년 이후 가장 컸다. 추석 대목을 앞둔 어민들 얼굴은 잿빛이 됐다. 명절에 출하하려 했던 참돔 등을 팔지 못하고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물’ 갇힌 가리비, 빈 껍데기만

빈산소수괴도 말썽이다. 창원·고성에 있는 홍합·굴·가리비 양식장에서 지난 3~12일 143건의 폐사 신고가 접수됐다. 220㏊ 규모 양식장에서 4406줄(1줄당 길이 100m)에 걸린 패류가 피해를 봤다. 누적 피해액은 45억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고성 자란만에 밀집한 가리비 양식장 피해가 컸다. 전체 피해의 60%가 넘는다. 10월 수확을 앞뒀던 가리비는 알맹이 없이 빈 껍데기만 남았다.

빈산소수괴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용존산소 농도가 낮은(3.0㎎/ℓ) 물덩어리층이다. 여름철 남해안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탓에 지난해에도 통영·거제·고성의 굴 양식장에선 빈산소수괴로 73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었다.

지난 8일엔 통영 욕지도 인근 양식장에서 조피볼락(우럭) 등 300만 마리가 넘는 양식 어류가 폐사했다는 신고까지 들어왔다. 지자체는 고수온으로 인한 피해로 보고 조사 중이다. 지난달 초 욕지도 주변 수온은 우럭이 견디기 힘든 28~29도까지 치솟았다. 경남도 관계자는 “8월 초부터 조금씩 폐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어민들이 폐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해뒀다 뒤늦게 신고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덩어리) 탓에 경남 고성군에 있는 굴 양식장에서 굴이 폐사했다. 사진 고성군


6년 만에 적조 확산…“수온 등 삼박자 맞아떨어져”

이처럼 매년 찾는 고수온·빈산소수괴에 더해 2019년 이후 6년 만에 대규모 적조 피해까지 발생하면서 어민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연구원(수과원)은 올여름 폭우와 냉수대 영향 탓에 적조가 확산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과원에 따르면 8월 중순쯤부터 남해안 수온이 적조가 살기 좋은 24~27도를 유지, 육지와 가까운 연안을 중심으로 적조가 퍼졌다. 많은 폭우가 내리고, 동해 남부 연안까지 내려온 냉수대가 간접 영향을 미치면서 바다 수온을 낮췄기 때문이다. 8월 중순 전까진 남해 연안 수온이 28도 이상이어서 적조 발생이 억제돼왔다고 한다.

박태규 수과원 해양수산연구사는 “통영 욕지도처럼 바깥 해역(먼바다)은 28~30도를 왔다 갔다 하는 고수온이었는데, 오히려 (수심이 낮아 온도가 더 빨리 오르는) 안쪽 수온이 더 낮았다”고 했다. 이어 “폭우로 적조 생물 성장에 필요한 육상 영양염이 바다로 많이 흘러왔다”며 “적정 수온에 영양염이 많고, 경쟁종이 없는 등 3가지 조건에 따라 적조는 확산하는데, 이번엔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어민이 적조로 집단 폐사한 참돔을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독자


‘공존 불가’ 저승사자들 한꺼번에 왜?

어민들 사이에선 적조와 고수온·빈산소수괴가 한꺼번에 발생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대개 빈산소수괴는 고수온(28도 이상)에서 잘 발생하는 반면, 적조는 고수온에서 잘 성장하지 못하고 사멸하기 때문이다. 빈산소수괴는 주로 여름철 바다 표층 수온이 급격히 상승, 표층과 저층의 온도 차이로 물 순환이 잘 안 돼 표층의 산소가 저층으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발생한다. 박 연구사도 “시소 놀이처럼 고수온·빈산소수괴가 심해지면 적조가 누그러들고, 고수온-빈산소가 약해지면 적조가 오른다”고 했다.

이번에 빈산소수괴 피해가 발생한 양식장이 있는 고성 자란만과 창원 진해만은 반폐쇄성 내만으로, 물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 크다는 게 수과원 설명이다. 박 연구사는 “조류(潮流) 소통이 잘 안 돼 물이 고여 있으면 빈산소가 잘 생기는데, 진해만·자란만은 원래 빈산소수괴가 매년 발생하는 곳”이라고 했다. 적조 띠가 조류를 타고 확산해 남해 연안 전역에 퍼진 것과 달리, 빈산소수괴 피해는 주로 내만에 한정적으로 발생했단 의미다.

또한, 적조와 마찬가지로 폭우가 빈산소수괴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육지 영양염이 비를 타고 바다로 흘러들면 적조 생물의 영양분이 되는 동시에 바다 저층에선 미생물이 육지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산소를 소비, ‘저산소화’ 된 물덩어리층이 곧잘 생겨나기 때문이다. 박 연구사는 “같은 남해안이어도 해역별로 조류, 경쟁종 등 환경이 다르다”며 “다만 올해 수온이 그리 높지 않아 빈산소수괴는 예년보단 약한 편이었다”고 했다.
2022년 10월 경남 창원시 마산만(진해만에 포함된 내만)에서 산소부족 물덩어리로 집단 폐사한 정어리 사체가 수거되고 있다. 중앙포토



안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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