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중독 현상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58)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초·중·고 수업 중 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한국의 '휴대전화 금지법'을 "시대를 앞선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앙일보에 "한창 뇌가 형성·성장하는 청소년에겐 스마트폰 제한이 일종의 '안전장치'가 된다"며 수업뿐 아니라 쉬는 시간을 포함한 학교생활 전반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렘키 교수는 스탠퍼드대 중독 의학 진단 클리닉에서 진통제, 술, 소셜미디어서비스(SNS) 등 다양한 중독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진료해왔다. 2021년 펴낸 저서『도파민네이션』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방송·강연 일정이 잇따르고 있다. 그와 e메일을 통해 청소년기 스마트폰 사용 규제와 해결 방법에 물었다. 다음은 렘키 교수와 일문일답.
Q : 내년 3월부터 한국의 학교에선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된다.
A : 15년 넘게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처음엔 주변에서 나를 미친 사람처럼 취급했다. 하지만 이젠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스마트폰 사용 탓에 발생한 청소년의 피해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대를 앞서고 있다. 멋지다(Bravo!).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의 초중등 공립학교에서 비슷한 조치를 하곤 있지만, 전국적인 대응은 부족한 편이다.
Q : 등교 때부터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 :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완전히 금지하는 거다. 그래야 교사들은 학생의 스마트폰을 단속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스마트폰 대신 얼굴을 보고 소통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전면 금지한 미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다.
Q : 디지털 기기 이용 중단이 청소년에게 왜 중요한가.
A : 청소년기는 뇌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시기다. 어른이 된 후에도 작동하는 신경학적 틀을 형성한다. 어린 시절 약물, 술에 노출된 아이들은 성인 때도 중독 가능성이 더 높다. 술을 마시는 사람 중 10~15%가 중독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때문에 미성년자에게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Q : 저서에서 4주간 ‘도파민 단식’을 강조했다. 조금 더 현실적인 대응책이 있다면.
A : 가정에서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을 금지하거나 알림 기능을 끄고, 흑백으로만 표기되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 된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비행기 모드’와 유사하게 가족이 모두 일정 시간 동안 알림을 받을 수 없게 하거나 화면을 모두 흑백으로 보이게 하는 기능을 넣었으면 좋겠다.
Q : 한국에선 스마트폰을 플라스틱 통에 넣고 잠그는 장치도 유행한다.
A : 스마트폰에 제한 없이 접근하고, 이를 통해 값싼 보상을 받는 세상에서 욕망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온 가족이 하루 또는 일부 시간 동안 스마트기기를 쓰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하는 ‘디지털 안식일’을 추천한다.
Q : 한국에서 10대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A : 학계에선 소셜미디어 중독이 자해와 자살 생각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가정으로부터 정서적 지지나 친구들과의 유대 관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이버 공간 속 따돌림, 성범죄를 당한다면 아이들은 더욱 수치심에 빠질 수 있다.
Q : 『도파민네이션』은 한국에서도 20만부 이상 팔렸다.
A : 한국인 가족과 수십년간 교류하고 있다. 남편은 1991~92년 부산에서 영어 강사를 했다. 그 무렵 나는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남편과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사를 얘기하다 친해졌다. 2000~2010년 남편의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인 가족과 2013년 한국에서 다시 만나 여러 곳을 돌면서 전통 음식을 맛본 적 있다.
🔍️애나 렘키 교수 =1989년 미국 예일대에서 인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정신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스탠퍼드대 중독 클리닉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 내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남용 문제를 연구하다가 중독 유발 물질을 술이나 SNS, 인터넷 콘텐트 등으로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