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외국인 근로자에게 발급하는 H-1B 비자의 연간 수수료를 100배 수준인 10만 달러로 대폭 인상하면서 미국 기업과 해외 근로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반면 캐나다 등 경쟁국은 글로벌 인재 유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미국 내 IT·금융 기업들이 H-1B 비자 프로그램 참여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애덤 코바체비치 ‘챔버오브 프로그레스’ 대표는 NYT 인터뷰에서 “이는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한 손을 뒤에 묶고 싸우는 것과 같다”며 “AI 핵심 인재 상당수가 외국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벤처업계에선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불평등 심화 우려도 나온다. NYT는 “애플·엔비디아 같은 대기업만 수수료를 감당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사실상 배제될 것”이라는 투자업계 우려를 전했다. 와이콤비네이터 게리 탠 CEO는 “스타트업 기반을 흔드는 조치”라며 “결국 캐나다 밴쿠버·토론토 같은 해외 기술 허브가 수혜를 볼 것”이라고 평가했다.
캐나다 나인포인트파트너스의 알렉스 탭스콧 전무는 “미국의 손해는 곧 캐나다의 기회가 된다”며 “글로벌 인재가 미국 대신 캐나다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로라 리스 국장은 “비자 프로그램을 왜곡해온 고용주들 때문에 미국인들이 공정한 기회를 잃고 있었다”며 “10만 달러 수수료는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옹호했다.
이번 조치 발표 직후, 해외 체류 중이던 H-1B 근로자들은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영화 ‘분노의 질주’에 빗대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는 인도인 승객들이 “새 규정 발효 전 미국에 들어가야 한다”며 비행기에서 내려 항공편이 3시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일부 근로자는 코로나19팬데믹 당시 여행금지 직전 미국행 항공기에 뛰어올랐던 경험과 비교했다.
NYT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JP모건 등 주요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당분간 미국을 떠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혼란이 확산되자 백악관은 “신규 신청에만 적용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을 비행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