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GPS(위성항법시스템) 시장을 개척한 가민(Garmin)이 ‘손목 위 연구소’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1989년 창업후 민간 항공·선박용 GPS 내비게이션 기기를 개발한 가민 러너와 아웃도어족의 필수 장비인 스마트워치를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엔 당뇨·고혈압 등 대사질환 연구와 임신부 건강 관리까지 영역을 넓혔다.
가민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가민 헬스 서밋’을 열고 신제품 ‘베뉴4’를 공개했다. 베뉴4는 배터리 수명이 최대 12일에 이르며, 80여 개의 스포츠·건강 앱을 지원한다.
특히 ‘개인별 건강 상태 알림(Health Status)’ 기능이 가민 제품 중 처음으로 탑재됐다. 약 3주 동안 ▶심박수 ▶심박 변이도(HRV) ▶피부 온도 ▶호흡 ▶산소포화도 등 5가지 지표를 축적해 개인별 정상 범위를 계산하고, 수치가 이를 벗어나면 ‘몸에 이상 신호가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삼성전자·애플 등과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가민이 내세운 차별점은 긴 배터리 수명이다. 요른 왓츠케 가민 헬스디렉터는 중앙일보에 “수면은 건강 퍼즐의 핵심인데, 배터리를 충전하느라 수면 기록을 놓친다면 데이터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가민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은 약 62억9700만 달러(약 8조7000억원)로, 전년 대비 20% 가까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협업 연구도 활발하다. 가민은 이날 킹스칼리지 런던과 손잡고 ‘모자 건강 증진(EMBRACE)’ 프로그램의 스마트워치 독점 공급자에 지정됐다고 발표했다. 최대 6만 명의 임산부와 배우자, 아기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웨어러블 기반 연구다. 연구팀은 가민을 통해 다양한 생체 데이터를 수집해 임신성 당뇨와 고혈압, 산전·산후 우울증을 조기 감지하고 맞춤형 관리로 이어갈 계획이다. 조십 카 킹스칼리지 런던 인구·디지털 건강과학 교수는 “가민으로 장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연구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며 “운동만으로도 임신성 당뇨 발생을 40% 줄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가민은 하버드·옥스퍼드대와도 1만 명 규모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규칙적인 운동·수면이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프로젝트다. 업계에선 웨어러블 기기가 소비자용 운동기록 관리를 넘어 보건의료 정책 연구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글로벌 통계 소프트웨어 기업 싸이텔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스마트워치 기반 임상시험은 환자를 상시 원격 모니터링할 수 있어 참여율을 높이고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