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

중앙일보

2025.09.21 08:10 2025.09.21 13:2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9월 10일, 미국 보수 청년운동가 찰리 커크(사진)가 유타 밸리 대학 강연 도중 총탄에 쓰러졌다. 이민·총기·젠더 문제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논쟁과 설득이라는 민주주의의 무대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은 활동가였다. 수많은 젊은이를 보수 쪽으로 끌어들이는 데 기여한 장본인으로, 캠퍼스를 돌며 반대자와 맞토론을 벌이고, 학생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며 자신의 주장을 설득했다. 뉴욕타임스조차 “커크는 정치를 올바른 방식으로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미국 사회를 애도가 아니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 보수 진영은 “좌파의 증오와 검열이 마침내 총탄으로 이어졌다”며 이번 사건을 표현의 자유 탄압의 연장선으로 해석한다. 반대로 진보 진영은 폭력을 규탄하면서도, 커크가 옹호해 온 총기 권리의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대학 내 집회와 온라인 표현을 더욱 단속할 것을 우려한다.

정치적 암살은 언제나 그 사회의 깊은 균열을 드러내 왔다. 기원전 52년, 로마의 호민관 클로디우스 풀케르는 곡물 무상 분배와 개혁 정책으로 민중의 지지를 얻었지만, 동시에 거친 언행과 거리의 폭력 집단을 앞세워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카이사르의 후원을 등에 업고 원로원 귀족 세력과 맞섰으나 결국 정적 밀로의 무리에 의해 암살됐다. 시신이 로마로 운구되자 지지자들의 분노는 장례식에서 폭발해 원로원 회당을 불태우는 사태로 이어졌다. 클로디우스의 죽음이 초래한 혼란은 카이사르에게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 주었고 공화정 체제 자체를 흔드는 전조가 됐다.

커크의 죽음은 전 세계를 뒤흔드는 비극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갈라진 사회가 어떻게 폭력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준다. 사회 전체가 대화와 토론의 공간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서구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