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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변방이래"…한국 페어서 63억짜리 작품 팔렸다

중앙일보

2025.09.21 13:00 2025.09.2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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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키아프리즈’서 확인한 K아트 파워
경제+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증명된 K컬처의 열기가 ‘K아트’로 번지고 있다. 글로벌 미술 시장이 여전히 침체한 상황에서도, 지난 3~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3대 미술 박람회 ‘프리즈(Frieze)’와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선 고가의 미술품들이 빠른 속도로 팔렸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2025)’ 디렉터는 “올해 행사는 서울이 세계 미술계의 진정한 중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머니랩은 이번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를 통해 K아트 파워를 확인하고, 그 속에서 ‘아트 테크(미술품 재테크)’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한국에서 450만 달러에 팔린 마크 브래드퍼드의 3부작 ‘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
세계 최대 미술 판매 행사인 아트바젤과 글로벌 투자은행(IB) UBS가 발간하는 ‘글로벌 미술시장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미술시장 매출은 약 575억 달러(약 80조원)로 전년 대비 12% 줄었다. 2년 연속 하락세다. 특히 고가 미술품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전체 시장 규모도 줄었다.

한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매출 규모는 최근 5년간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총거래액은 약 57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7% 감소했다. 2022년 약 1446억원과 비교하면 60% 급감한 수치다.

◆미술 불황 속 ‘키아프리즈’ 반전=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린 프리즈·키아프 아트페어가 ‘반전’을 보여줬다. 다수의 갤러리들이 “예상보다 잘 팔렸다” “선전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스위스 기반 글로벌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는 마크 브래드퍼드의 3부작 ‘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Okay, then I apologize)’를 450만 달러(약 62억5000만원)에, 조지 콘도의 ‘퍼플 선샤인(Purple Sunshine)’을 120만 달러(16억7000만원)에 팔았다.

유럽 대표 갤러리인 타데우스로팍도 바젤리츠의 작품인 ‘그것은 어둡습니다, 그것은(es ist dunkel, es ist)’을 180만 유로(29억3000만원)에 판매했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행사 초반부터 강한 활기를 느꼈고 갤러리들의 성과도 좋았다”며 “‘블루칩’부터 신진 작가까지 아우르는 스펙트럼은 시장의 회복력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말했다. 서울옥션 강남센터장·S2A 디렉터 출신인 소육영 에이오유 대표는 “가격이 조정받은 지금이 아트테크의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7일 열린 프리즈·키아프에선 한국 블루칩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그림은 20억원에 판매된 김환기의 ‘구름과 달’.
올해는 유독 한국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학고재는 김환기의 ‘구름과 달(Cloud and the Moon)’을 20억원에, 국제갤러리는 박서보의 작품을 7억5000만~9억원에, 갤러리현대는 정상화의 회화를 8억3000만원에 판매했다. 티나김갤러리는 김창열의 회화를 약 4억9000만원에, PKM갤러리는 윤형근의 작품을 약 5억6000만원에 팔았다. 해외 갤러리들도 앞다퉈 한국 작가의 작품을 내놨다. 프랑스 갤러리인 메누르에선 이우환 작가의 회화를 약 9억7000만원에 판매했다. 프랑스 갤러리인 알민레쉬도 김민정의 회화 작품을 약 1억6000만~1억9000만원, 정영주의 작품을 약 9700만~1억1000만원에 팔았다. 소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은 여전히 국제 미술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며 “미술시장이 침체할수록 안정적인 작가에 대한 구매수요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노재명 아트오앤오 대표 역시 “미술 시장 경기가 안 좋을 때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한국의 블루칩 작가 작품을 판매하는 전략이 안전할 수 있다”며 “최근 케이팝 등이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K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패트릭 리 디렉터는 “한국 블루칩 작가들의 두드러진 위상은 한국 미술시장의 성숙함과 깊이를 보여준다”며 “이들은 국내 컬렉터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고, 점점 더 많은 해외 기관과 구매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블루칩 작가의 작품에 대한 투자 성과는 안정적인 편이다.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인 열매컴퍼니에 따르면 이 회사가 그동안 이우환 작가의 작품(총 29점)에 투자해 얻은 평균 수익률은 14.92%다.

◆젊은 컬렉터, 시장 이끄는 주역으로=MZ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의 성향도 아트테크를 위해 주목해야 할 요소다. 이번 프리즈 행사에는 블랙핑크 리사와 BTS의 RM·V·제이홉, NCT의 Mark, 안소희 등 다수의 연예인이 행사장을 찾았다. MZ세대 사이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 작품 구매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같은 작가라도 작품 사이즈를 작게 해서 가격대를 낮추거나,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작은 사이즈의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 10여 개는 개막하기도 전에 ‘완판(완전 판매)’됐고, 키아프에선 이상원 작가의 폭이 11㎝ 남짓한 사이즈의 작품이 판매되기도 했다. 패트릭 리 디렉터는 “젊은 컬렉터는 정보에 기반해 작품에 접근하고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 미술품 판매를 이끄는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정옥 NH투자증권 이사대우는 “코로나19 이후 미술시장에 진입했던 MZ 중에 재테크 관점으로만 진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이탈한 반면, 그림이 좋아서 들어온 이들은 안목이 많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종현 작가의 판화 정도면 작가 위상과 퀄리티 면에서 MZ들도 접근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본다”며 “이름이 잘 알려진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젊은 작가의 원화를 구매하는 것도 합리적으로 작품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소 대표는 “MZ세대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가를 연구한 뒤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작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며 “김진희·최지원 작가 등 해외 미술관의 전시 프러포즈를 많이 받고 있는 유망한 작가들의 작품은 3000만원 내외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어 비교적 접근성이 높다”고 말했다.

적은 비용으로 미술 작품에 투자할 때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한국의 블루칩 작가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들 작가 작품 중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판화를 구매하거나, 떠오르는 ‘라이징’ 작가들의 작품에 투자해 ‘고위험, 고수익’을 누리는 전략이다. 소 대표는 “블루칩 작가의 판화는 상승장에선 상당한 수익률을 보이지만 하락장에선 일반 작품보다 하락률이 높다”며 “가격 거품이 꺼진 이런 시기에 컨디션이 좋은 판화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해 두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 작가 중에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해외 미술관에서 적극적으로 프러포즈 받는 작가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트테크의 경우 오직 ‘투자 수단’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취향의 영역’으로 접근하라는 조언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장정옥 이사대우는 “안목과 소양 기르기, 그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고 재테크는 나중에 따라온다는 관점을 갖는다면 후회가 없고 교훈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신진 작가의 성장성을 볼 때는 대규모 전시를 할 수 있는 작가인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갤러리에 전속되어 있는지, 작가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지, 평론·비평 등에서 스토리텔링이 풍부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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