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경쟁력과 새로운 서비스로 무장한 국내 스타트업·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이 갈수록 활발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지원은 초기 진입보다는 ‘성장’에 맞춰져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다. 중앙일보가 창간 60주년을 맞아 이달 11~19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이 추천한 스타트업·중소기업 대표 60인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그래픽 참조〉
설문에 응한 기업인들은 “글로벌 시장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한정된 내수 시장과 자원, 기술·서비스에 대한 자신감,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 탈피 등을 이유로 꼽았다. 곽지호 뉴럴디 대표는 “일찌감치 세계시장을 개척, 점유율을 확보하면 진입장벽이 높아져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전력 시설물, 유전 파이프 등의 상태를 진단·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한국전력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미국·베트남 등에 진출했다. 이병태 KAIST 명예교수는 “의료·금융 등 서비스는 기술이 뛰어나면 글로벌 진출이 어렵지 않은데도, 정부 규제로 국내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에 법인을 세우거나, 해외 자회사를 본사로 전환하는 ‘플립’도 새로운 창업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벤처투자정보 업체 더브이씨(VC)에 따르면 해외에 본사를 둔 한국 스타트업은 2014년 32개에서 지난해 186개로 약 6배 증가했다. 해외 창업은 펀딩이나 인수합병, 상장 등에서 국내보다 유리하다고 인식된다.
하지만 해외 진출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응답자 중 해외 투자(인력·투자액 기준) 비중이 10% 미만인 경우가 26명으로 가장 많았다. 해외 매출 비중 역시 절반 이상(37명)이 10% 미만이었다. 해외 매출 비중이 90%가 넘는 곳은 인도에서 앱 다운로드 누적 1억 건을 올린 신용평가 핀테크 밸런스히어로, 미국·유럽 등에서 인증을 받은 치과용 임플란트 기업 이젠임플란트 등에 그쳤다.
해외 영토 확장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는 현지 인재 확보, 마케팅, 비자, 회계 등 현지 경영의 어려움(89명·중복 응답)을 꼽았다. 이어 현지 자본 조달(39명), 언어장벽(20명) 순이었다.
정부 정책에 대해선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정부 지원에 대해 평균 5.18점(만점 10점)으로 평가했다. 사용자 90% 이상이 해외에 있는 사이버 위협 인텔리전스 업체 AI스페라의 강병탁 대표는 “인력을 원격으로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정부 지원은 금액이 너무 적어 실제 해외 진출 가능성이 낮은 기업들이 경험 삼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에듀테크 기업 제제듀의 이주진 대표도 “정부 프로그램은 단기 해외 출장 위주여서 실질적인 고객 확보나 투자 유치는 어려운 구조”라고 짚었다.
기업들은 경영 성과와 고용 창출이 기대되는 스케일업(Scale-up)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김윤희 민다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의 지원 프로그램 대부분은 창업 7년 미만 기업에 집중돼 있다”며 아쉬워했다. “성과가 비교적 단기간에 나오는 정보통신·유통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심순섭 하이드로켐 대표)는 지적도 나왔다. 김형주 LG경영연구원 경제정책부문장은 “정부가 기업 생애주기에 맞춰 창립 초기부터 성장 단계별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도 지역사회·세수·고용 등에서 기여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