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한 지 6개월 만에 중국 광저우조선소에서 10억원어치 일감을 따냈다. 일본과 싱가포르, 베트남 업체와도 잇달아 계약했다.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가량, 이 가운데 30%가 해외에서 나왔다. 부산에 본사를 둔 창업 9년 차 기업 탈렌트엘엔지 얘기다.
이 회사는 친환경 선박·플랜트용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수소 연료 배관을 전문 생산한다. 백중진 탈렌트엘엔지 대표는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한 제품 개발과 영업에 집중해 짧은 시간에 사업 본궤도에 안착했다”며 “한국은 테스트베드(시험무대), 진짜 승부처는 글로벌 시장”이라고 말했다.
22일로 창간 60주년을 맞은 중앙일보는 내수 침체, 주력 제조업 경쟁력 악화, 자유무역 위협이라는 3대 위기 속에서 ‘넥스트(NEXT) 60년’ 성장 화두를 찾는 젊은 기업인 6인을 만났다. 이들이 제시하는 공통 슬로건은 ‘고 글로벌(Go Global)’, 즉 해외시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전제 조건은 ▶기존의 성공 방식이나 선입견을 넘어서고 ▶차별화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현지의 법과 제도, 문화에 적응하며 ▶낡은 규제를 걷어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냉동김밥을 히트시키며 K푸드 신화를 쓰고 있는 최홍국 올곧 총괄대표는 ‘김밥은 즉석에서 만든다’ ‘김밥은 국내용’이라는 인식을 뒤집어 기회를 만들었다. 16살 때부터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다가 김밥공장 건축 의뢰를 받으면서 아예 김밥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밥은 유통기한이 짧아 폐기량이 많다는 하소연을 듣게 됐어요. 그때 냉동식품으로 만들자고 생각했지요. 판매처도 없이 무작정 냉동시설을 갖춘 김밥공장을 지었습니다.”
김밥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을 핵심 타깃으로 삼았다. 2023년 8월 미국 유통매장인 트레이더조에 입성한 올곧의 냉동김밥은 출시 열흘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지금까지 팔린 올곧 냉동김밥은 약 3000만 줄, 금액으로는 600억원어치에 이른다.
아파트 인테리어로 세계시장을 공략 중인 아파트멘터리는 표준 견적, 균질 시공을 무기 삼았다. 국내 대기업은 가맹 계약을 맺은 대리점(인테리어 업체)이 상담·시공을 진행한다. 반면에 아파트멘터리는 상담부터 설계·시공까지 직접 관리한다. 같은 브랜드라도 시공업체에 따라 결과물 차이가 나고 가격 시비까지 겪었던 고객들이 아파트멘터리의 서비스에 관심을 가졌다. 윤소연 공동대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10년간 업력을 쌓았더니 이제 따라오는 경쟁사가 없다”고 자랑했다. 지난해엔 홍콩법인을 세웠고, 미국 뉴욕과 싱가포르 등에도 진출 채비 중이다.
해외 진출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경쟁력은 둘째 치고 기존 제도가 가로막고 있어서다. 대출비교 플랫폼 핀다는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4년을 고군분투했다. 대출 중개 ‘규제 샌드박스’(한시적 규제 유예) 대상으로 선정되고, 2년 뒤 금융소비자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안심하고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도 험난했다. 이혜민 공동대표는 “보안 위협을 이유로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규제를 하는 나라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며 답답해했다.
외화 결제 핀테크 기업인 트래블월렛을 창업한 김형우 대표는 “해외 46개국과 제휴하면서 국내외 업체 간 인식 차이를 절감했다”며 “미국에선 당장 성과가 없어도 ‘비전이 보이는 다크호스’라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선 10개의 장점이 있어도 단점 하나가 발견되면 제동이 걸린다”고 꼬집었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지화 과정에서 법·제도 준수는 물론 중장기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