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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길보다 열흘 단축, 韓이 요충지…개척까진 '빙산 넘어 빙산' 왜? [창간 60년-신패권 전장]

중앙일보

2025.09.21 13:00 2025.09.2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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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중국 해운사 하이지에(Haijie)의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칭다오를 출발해 유럽으로 향했다. 영국 펠릭스토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폴란드 그단스크까지 간다. 통상 다니는 수에즈운하 루트가 아닌 북극항로 중 북동항로(NEP)를 이용한다. 펠릭스토에 도달하는 기간은 18일. 한 달 이상 걸리는 수에즈 루트보다 보름가량 빠르다.
부산항 떠나는 컨테이너선. 연합뉴스
북동항로는 알래스카 인근 베링해를 시작으로 서쪽 바렌츠해에 이르는 약 5600㎞ 구간이다. 러시아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을 넘나드는 길로 활성화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루트의 첫 운항 기록은 1906년, 이후 100년간 이 뱃길을 다닌 건 연간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하지만 2023년엔 41척, 지난해엔 38척이 오갔다.

2015년 543만t 수준이던 물동량도 지난해 3790만t으로 급증했다. 러시아는 북동항로 물동량을 2030년까지 1억5000만t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수에즈운하 물동량의 10% 수준이다. 러시아 정부는 무르만스크·아르한겔스크 등 주요 항만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북극횡단철도를 확대해 내륙과 해상 통합 물류망을 구축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한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 전후로 연중 북극해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북극항로 개척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우선 내년 북동항로 시범 운항을 추진한다. 물동량 증가에 대비해 진해 신항 건설 속도도 끌어올린다. 쇄빙선 역시 연간 1척씩 5년간 5척을 건조한다는 목표로 총 5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김주원 기자
해양수산부 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수출입 화물 16억7000만t 중 99.7%인 16억6500만t이 해상운송으로 처리됐다. 기존 바다 물류의 ‘병목 구간’을 피할 수 있는 북동항로는 수출입 물류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대체 루트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화물선이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가는 데 수에즈운하가 아닌 북동항로를 통과하면 운항 거리는 최대 40%(약 7000㎞), 운송 기간은 10일 이상 줄일 수 있다. 연료비도 절감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분석에 따르면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이동할 때 북동항로의 1회 운항 비용은 300만 달러(여름철 기준)로 수에즈 루트(383만 달러)보다 약 22%가량 저렴하다. 러시아의 전체 석유∙가스 매장량의 약 60%는 북극 지역에 집중돼 있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원양어업을 확대하고, 수산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박경민 기자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름철에도 기상변화에 따른 결빙으로 운항에 차질이 생기거나, 고립될 수 있다. 박진구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재 위성자료는 대부분 이틀 전 정보다. 급변하는 해빙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선박 항로를 설정하려면 실시간 정보 수집을 위한 위성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겨울철엔 쇄빙선 이용료와 보험료가 오르고, 운항 기간이 길어져 장점인 경제성이 희석될 수 있다. 일부 구간의 경우 최저 수심이 7m에 못 미칠 정도로 얕아 대형 컨테이너선이 다니기 어려운 환경인 것도 단점이다. 게다가 북극항로 운항 규칙은 러시아 국내 법령에 의해 정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하고, 운항 중에도 수시 보고가 필수다. 위반하면 운항 중지, 억류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당장은 한국과 서구 국가의 러시아 경제 제재 해제 시점이 관건이다.

배규성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연구교수는 “제재가 풀리더라도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밀착, 미국의 대중 견제, 북극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등은 반복적으로 한국을 고민하게 할 것”이라며 “이런 지정학적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북동항로 개발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 한 해빙 위에 있는 북극곰. 연합뉴스
환경 이슈도 있다. 북극항로를 다니는 배가 늘어나면 해양 생태계와 그에 의존하는 현지 지역사회에 미치는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지훈 한국북극연구컨소시엄(KoARC) 사무총장은 “이미 국제해사기구(IMO)의 극지 규범(폴라 코드, Polar Code)를 통해 북극을 다니는 배는 청정연료를 사용하도록 규제한다”며 “그 외에도 선박 운항에 필연적인 소음이나 선박 표면에서 떨어져 나가는 미세플라스틱 등 향후 정리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북극항로 정책은 향후 북극 개발까지 아우르는 차원에서 장기적, 다층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법인 세종은 최근 보고서에서 “상업적 접근을 넘어 법적, 정책적 리스크 관리 체계와 시나리오별 전략을 수립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장원석.김경희.손해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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