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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19세기 나폴리로의 여행

중앙일보

2025.09.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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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ri)”라고 썼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는 그만큼 감탄과 찬사의 대상이었죠. 이탈리아 북부나 중부처럼 부유한 르네상스 도시만이 아니라, 서민 문화와 바닷가 생활 등 삶의 고단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는 나폴리는 예술가들에게 현실적이고 생생한 삶의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던 거죠. 하늘과 바다의 색채, 빛의 변화 등을 포착하기 좋은 나폴리의 해안가인 포실리포 인근에선 그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포실리포 학파(Posillipo School)라는 회화 집단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정식 학교나 협회가 아님에도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밝은 색채로 풍경을 그리는 경향으로 유명했죠.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장 전경
19세기 나폴리는 군주제에서 이탈리아 통일(1861년)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를 겪습니다. 격동의 시대, 회화는 변화하는 사회의 기록이었고, 이 시기의 작가들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거쳐 서민과 하층민 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베리즈모(Verismo) 운동까지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했죠. 베리즈모는 프랑스 사실주의와 유사하면서도, 이탈리아 남부 특유의 사회 구조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기법으로 나폴리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많이 활용했습니다.

나폴리는 찬란한 햇빛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 활기찬 일상이 이어지며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죠. 나폴리의 정서와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전시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오는 11월 30일까지 열려요. 이탈리아 국립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과 협력한 이번 전시는 그들이 소장한 19세기 회화 컬렉션을 통해 이탈리아 남부가 겪은 사회 변화와 그 시대의 삶을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나폴리 시내와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는 카포디몬테 미술관은 이탈리아 남부 최대 규모의 국립미술관으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약 4만7000점에 달하는 방대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평화롭고 한적한 분위기를 표현한 살바토레 페르골라의 ‘칼로레 강의 다리’.
1815년, 유럽 전역을 뒤흔든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 이후 나폴리는 부르봉 왕가가 복권되며 양시칠리아왕국의 수도로 재편됐어요.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기까지 나폴리는 정치적·사회적 전환의 중심에 있었으며, 통일 이후에도 다양한 계층과 문화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었죠. 이번 전시는 크게 회화 속 여성 형상과 그에 투영된 이상을 통해 당대 사회의 가치관과 감수성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됐으며 귀족과 서민의 실내 장면, 도시 교외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 등 이탈리아 남부의 일상과 자연을 감상할 수 있죠. 두 주제를 따라 펼쳐지는 화면 속을 걷다 보면, 이상과 현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19세기 이탈리아 남부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총 4개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의 1부 '그녀들을 마주하다'에서는 18세기에서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다채롭게 변하는 여성상을 만나볼 수 있죠. 이 시기 여성들은 가정의 여왕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수호자이자 대화에 능하고 장난기 넘치는 살롱(salon·상류층과 중산층 사이에서 유행한 사교 모임)의 주역 등 세련된 인물로 등장해요. 궁정 화풍의 정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사보이아 왕비의 초상에서부터, 안토니오 만치니가 스푸마토(sfumato·윤곽선을 흐릿하게 처리해 색과 형태가 부드럽게 전환되도록 하는 회화 기법)로 무심히 부채를 흔드는 여인을 그려낸 '부채를 든 여인의 초상' 등 여성상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변화해왔는지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어요. 마이아트뮤지엄 홍보팀 정희원 사원은 1부에서 제인 벤함 헤이의 '농민 여성'을 주목하라며 "중남부 이탈리아 민속 의상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을 묘사했는데, 그의 강렬한 눈빛은 여성을 주체적 존재로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죠.

19세기 회화 중 일부는 문학 작품으로 서사를 직접 시각화해 정서를 담아냈는데 그 일환이 '편지'라는 작품입니다. '편지'는 연인의 편지를 손에 쥔 채 밀라노 시내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시대의 이상을 반영했죠. 이 그림을 그린 도메니코 인두노는 1850년대 중반부터 애국적 영감을 받은 주제를 자주 다뤘다고 해요. 당시 예술가들은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 참여하고 그로 인한 희생을 감내한 중산층 가정의 삶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을 사회적 사명으로 여겼죠.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에서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다채롭게 변하는 여성상을 볼 수 있다. 프란츠 폰 렌바흐의 ‘마리아 술리에의 초상화.
이어 유럽 사회의 풍속을 담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2부 '각자의 방, 각자의 세계'가 펼쳐져요.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된 19세기에는 중산층이 급속히 성장하며 이들의 이상과 생활양식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물질적 여건뿐 아니라 인간과 환경, 세대와 성별, 계층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기반이 되는 여러 요소가 빠르게 변모했죠. 화가들은 이들의 일상을 담은 실내 풍경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포착했고 동시대 가정의 모습은 물론 그 안에 반영된 사회적 규범과 인간관계, 나아가 가족 구성원 간의 역할 변화 등도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이때 가구나 소품·직품·조명과 같은 실내 장식 요소들은 이야기 전개의 핵심적인 장치로 작용했으며, 작가가 붙인 작품 제목 또한 서사의 흐름을 유도하는 중요한 '문학적 요소'였다고 해요. 빈첸초 아바티의 '부엌 내부'가 이에 해당하죠. 이 작품은 대형 주방의 구조와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한 아바티의 대표작으로 측면 창으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사물의 형태와 질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해요. 또 질서 정연하게 놓인 냄비와 식기, 조리 도구들은 생생하게 그렸다고 평가받아요. 이 시대에는 과거 종교나 신화를 다루던 전통적 주제에서 벗어나 가정의 일상과 사람들 삶에 주목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반영했죠.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참여한 지식인이자 화가로 사실성과 서정성을 아우르는 화풍을 확립한 조아키노 토마의 ‘토레 델 그레코의 밧줄공들’.
3부 '토마의 시선'에서는 이탈리아 나폴리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 세계를 조명합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참여한 지식인이자 화가였던 토마는 역사적 사건과 서민의 일상을 주제로 한 회화를 통해 사실성과 서정성을 아우르는 화풍을 확립했다고 합니다. 강한 명암 대비와 극적인 구도를 통해 '실존적 불안'을 섬세하게 포착한 게 특징이죠. 또 빛의 효과와 그 변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토마는 '성 베드로의 헌금' '빌라 가르조니의 안뜰'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중 일부를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어요. 토마는 외곽선과 세부 묘사를 절제하고 외형보다 인물의 분위기와 감정에 집중한 화풍을 선보였는데요. 실제로 병에 걸려 떠난 아들을 그린 작품 '죽어가는 아들'을 보다 보면 그의 절절함과 슬픔이 느껴집니다. 또 토마의 정물화는 형태와 빛에 대한 탐구가 두드러지며 17세기 나폴리 회화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져요. 그는 나폴리의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냈는데, 이때 빛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에 주목했죠. 정물화가 점차 상징적 의미를 잃고 순수한 장식성을 지향하던 시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찬란한 햇빛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 활기찬 일상이 매력적인 이탈리아 나폴리에 화가들은 호감을 가졌다. 마르코 데 그레고리오의 ‘카사칼렌다의 전경.’
마지막 섹션 '빛이 있었고, 삶이 있었던 곳'에서는 지중해를 비롯해 아름답고 웅장한 나폴리의 자연을 만나볼 수 있죠. 19세기 초 과거의 위대한 흔적이 더해진 장소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해요. 이에 상류층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고전 문명과 예술을 직접 체험하는 '그랜드 투어'가 퍼졌고요. 이탈리아는 그 여정의 핵심지로 로마의 유적,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의 고고학적 풍경 등을 만끽하면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드로잉·일기·문학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탈리아를 표현했죠. 광활한 지중해 풍경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힘에 이끌린 이들은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숭고함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19세기 화가들은 나폴리 주민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빈첸초 밀리아로의 ‘야외 트라토리아’.
또 해변의 밧줄공이나 바닷가의 아이들과 같은 일상적인 장면도 작품으로 옮겼는데요. 그중 '배와 거리의 아이들'은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모래를 장난감 삼아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죠. 당시 아이들은 뱃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강한 햇살과 평온한 바다 그리고 밝은 아이들 표정이 이러한 현실을 잊게 해주죠. '야외 트라토리아'는 마치 어제라고 해도 믿을 만큼 평화로운 일상을 캔버스에 옮겨놨습니다. 이 작품은 한적한 시골 마을인 카사칼렌다의 중심 거리에 있는 식당을 자세히 그렸는데 당시 건축 형태와 사실적인 묘사 등 19세기 나폴리 주민들의 삶과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 시대의 나폴리를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전시 속에서 마주하는 인물과 풍경, 넘실대는 바다와 햇살을 통해 아름답고 매혹적인 나폴리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
기간: 11월 30일까지
장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 마이아트뮤지엄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40분(입장 마감 오후 7시, 공휴일 정상 운영, 추석 당일 휴관)
입장료: 어린이 1만6000원, 청소년 1만8000원 성인 2만5000원



이보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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