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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당하는 러시아∙이스라엘…또다른 전장 된 문화∙스포츠

중앙일보

2025.09.22 00:10 2025.09.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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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한 광고판에 "축구 연맹: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발이다. 특히 지난 16일 유엔 인권이사회 독립 조사위원회(COI)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공개한 후 국제 사회의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국제 분쟁의 새 전장으로 문화예술·스포츠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21일(현지시간) FT에 따르면 COI 보고서가 공개된 16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광고판엔 “축구 연맹,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라” “경기장에 집단학살은 없다” 등의 문구가 적힌 광고가 등장했다. 친(親)팔레스타인 인권단체와 축구 팬, 전직 축구선수 등이 모여 벌이는 #GameOverIsrael(이스라엘게임끝) 캠페인의 일환이다. 캠페인의 골자는 이스라엘 대표팀을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자격정지 또는 퇴출시키고, 이스라엘 선수들의 대회 참가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지난 2024년 11월 6일(현지시간)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 경기장에서 열리는 파리 생제르맹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개막전 축구 경기 전에 "팔레스타인 해방"이라고 쓰인 거대한 현수막이 펼쳐졌다. AP=연합뉴스

다음날엔 영국 런던에서 ‘팔레스타인을 위한 연대(Together for Palestine)’라는 콘서트가 개최됐다. 제임스 블레이크, 핑크팬서리스, 세인트 레반트 등 수십명의 유명 가수들이 공연을 했고, 헐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와 프랑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에릭 칸토나 등이 콘서트에 함께했다. 주최 측은 약 1만2000명이 현장에서 공연을 보고, 20만 명 이상이 생중계로 시청했다고 밝혔다. BBC에 따르면 이날 콘서트로 모은 160만 파운드(약 30억 원)의 돈은 전액 팔레스타인 지원 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2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팔레스타인 하우스의 전광판에 집단 학살을 멈춰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9일엔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 종식을 촉구하는 단체 ‘팔레스타인을 위한 영화인들’ 주도로 1000여명의 영화인이 이스라엘 영화 기관·기업과의 협업을 거부하겠다는 서약문에 서명했다.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서명자 명단에는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틸다 스윈턴,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헐리우드 유명 배우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애덤 매케이, 에바 두버네이 등 유명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대중음악계에선 유럽 최대 대중음악 경연대회 유로비전(Eurovision)에서 보이콧 움직임이 퍼졌다. 유로비전 참가국인 아일랜드·스페인·네덜란드·슬로베니아 등이 “이스라엘이 (대회에) 참가할 경우 불참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유로비전의 보이콧 움직임은 전례가 있다.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로비전 측은 러시아 가수의 대회 참가를 금지했다.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에서 보이콧을 통한 고립을 겪은 건 이스라엘보다 러시아가 먼저인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21일(현지시간) 자체 경연대회 ‘인터비전’을 열며 맞불을 놨다. 냉전 시기 동유럽 중심으로 열리다 2008년 이후 사라진 이 대회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년 만에 부활시켰다. 주최 측은 “전통적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대회의 근본정신”이라고 강조하며 유로비전과 차별화를 강조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인근 브로드웨이 광고판 2곳에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대회 광고가 나온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인터비전 2025. 로이터=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인터비전 2025에서 우승한 베트남 대표로 출전한 가수 죽 푹이가 트로피를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대회는 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으며, 중국, 인도,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쿠바,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케냐 등 23개국 출신 가수들이 3000만 루블(약 5억원)의 우승 상금을 놓고 경쟁했다. 대회 우승자는 베트남 대표로 출전한 가수 죽 푹이다. 미국·호주 등 서방 출신 가수들은 대다수 불참했다. CNN은 “러시아가 문화·스포츠를 소프트파워 과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전쟁을 비롯한 외교적 갈등으로 인해 문화·스포츠 무대에서 고립에 직면한 것을 두고 FT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맞선 문화계 투쟁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1980년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등 120여명의 인사들은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영화인 연대’를 결성해 보이콧 운동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아담 하비브 런던 소아스대 부총장은 FT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와 넬슨 만델라라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명확한 주도세력이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렇지 않다”며 “아파르트헤이트 비판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초강대국의 동조를 받지 못한 반면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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