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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의 세계는 첩보 전쟁] 정상들 인체 배출물도 특급 정보…치열해지는 수집 공작

중앙일보

2025.09.22 08:22 2025.09.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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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지난 2일 일본 언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 열차를 이용하면서 별도의 전용 화장실을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에는 국가정보원이 전용 화장실 동원을 공식 확인했고 며칠 뒤 김 위원장의 배설물이 평양으로 이송된 정황까지 언급되면서 대중적 호기심은 정점에 이르렀다. 뒤이어 북한의 비밀주의를 ‘평양식 편집증’으로 해석하며 냉소와 풍자가 이어졌다. “이제 김정은 배설물 얘기까지 들어야 하나”라든가 “언제부터 그의 배설물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안이 됐나”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김정은 경호팀의 DNA 수거 눈길
정예 정보원, 분비물 수집에 총력
대소변 분석해 건강 상태 등 진단
‘백두혈통’ 생체정보 확보 작전도

사람의 배설물은 질병, 약물 복용, 식습관 같은 개인 건강의 비밀을 드러내는 핵심 단서다. 냉전 시대 정보기관들은 국가 안보와 외교에 직결되는 지도자의 건강을 배설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내밀한 정보여서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거의 없다. 입수한 배설물과 이를 평가한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외교적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교차 검증된 역사적 사례들이 존재한다.

북한 수행원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앉았던 의자를 닦고 있다. [사진 텔레그램]
소련의 마오쩌둥 배설물 수집 작전
1949년 12월 마오쩌둥이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찾았다. 크렘린은 3시간마다 성대한 만찬을 차려 극진히 환대했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스탈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이를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의도라 판단했다. 그는 숙소 곳곳에 도청 장치가 숨어 있다고 확신하며 벽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나는 먹고 똥 싸는 일만 하러 온 게 아니다!” 그러나 접견이 지연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련 정보기관이 마오쩌둥의 배설물을 은밀히 수집해 그의 건강 상태와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느라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전직 소련 정보장교 이고르아타마넨코가 러시아 첩보기관 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일화다.

브레즈네프 간 손상 알아낸 프랑스
1980년대 초반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국빈 방문으로 코펜하겐 당글레테르 호텔에 머물 때였다. 프랑스 대외정보국(SDECE)이 브레즈네프가 투숙한 방 바로 아래층 스위트룸을 빌린 뒤 천장을 은밀히 뚫고 변기 배수관을 분리해 그의 배설물을 채취했다. 확보된 시료는 곧바로 파리로 보내져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보드카 애호가로 알려진 브레즈네프가 심각한 간 손상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브레즈네프는 오래지 않아 건강 악화로 생을 마감했다. 이 기묘한 첩보 작전은 ‘프랑스의 제임스 본드’로 불린 대외정보국 국장 알렉산드르 드 마랑슈가 퇴임 후 직접 밝힌 일화로 1994년 4월 4일자 타임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19년 김여정 부부장이 김 위원장 옆에서 재떨이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시리아 대통령 소변 수집한 모사드
시리아의 하페즈 아사드 대통령은 1999년 2월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암만을 방문했을 때 전용 변기를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그는 그 변기가 모사드와 요르단 정보기관이 협력해 특별히 제작한 장치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아사드가 화장실을 사용한 지 불과 몇 분 뒤 소변 샘플은 곧바로 이스라엘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모사드는 아사드가 과거 심장마비를 겪었을 뿐 아니라 당뇨와 암까지 앓고 있어 오래 살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 놀라운 작전은 2000년 1월 통신사 JTA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정확히 5개월 뒤 이스라엘의 협상파트너 아사드가 사망하면서 모사드의 분석은 놀라울 만큼 정확한 예측으로 입증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생명공학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자 정보기관들은 외국 지도자의 생체정보에 한층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문·홍채·얼굴·음성·정맥·서명·걸음걸이처럼 즉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물론 DNA 분석이 가능한 혈액·타액·머리카락·손톱·피부 조각·체액 등 각종 신체 유래 샘플까지 수집 대상에 포함됐다.

2018년 북한 경호원이 김 위원장 자리를 소독하고 있다. [뉴스1]
북한 주요 인사 생체정보 확보 작전
2010년 11월 28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 명의로 발송된 기밀 외교 전문을 공개했다. 이 전문에는 전 세계 주재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주요 외국 인물들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특히 이 지침에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고위 인사,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자, 유엔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의 지문·DNA·홍채 정보까지 수집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 [로이터]
그 무렵 북한의 백두혈통 인사 한 사람이 유럽의 어느 도시에 머물 예정이라는 첩보가 우리 정보기관에 입수됐다. 정보 요원 A는 그의 이동 경로를 정밀하게 예측하고 은밀히 생체 정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확보된 샘플은 오염을 막기 위해 전용 취급 키트에 밀봉된 뒤 항공기를 통해 즉시 서울로 이송됐다. 김정은 일가의 생체정보는 당사자뿐 아니라 김 위원장의 유전적 질병 취약성, 약물 반응, 만성질환 가능성,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를 추정하는 데 긴요한 자료가 된다. 몇 년 전 퇴직한 A는 이 생체정보를 입수한 일을 재직 시절 가장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이 떠난 자리에서 보안 작업을 하는 경호팀 모습이 포착되면서 북한의 김 위원장 생체정보 보호 행태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이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체제에서는 지도자의 건강 상태가 곧 정권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외부 시각에서는 김정은 일가의 건강 정보 관리가 지나치게 비밀스럽게 비칠 수 있으나, 정보 보호와 방첩 측면에서 보면 이는 전략적·정치적으로 충분히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들이 전용 화장실 쓰는 이유
이러한 관점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하나의 관례로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정상회의에서 개최국이 각국 정상들을 위해 전용 화장실을 마련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 이는 국제 의전과 보안 프로토콜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정상들이 공용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도청 장치 설치나 화학물질 노출 위험은 물론, 배설물을 통해 DNA나 건강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면 배설물의 수거와 폐기를 경호팀이 직접 관리할 수 있어 타국 정보기관이 생체정보를 확보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 시 배설물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러시아는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고 배설물을 본국으로 이송하는 전담팀까지 운영한다고 알려졌다. 미국은 국외 이동 시 모든 배설물 폐기 과정을 철저히 통제한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편집증에서 비롯된 과잉 대응이 아니다. 현대적 방첩 전략의 핵심이다. 생명공학과 유전자 분석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정상들의 배설물에 대한 방첩 활동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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