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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배임죄 폐지’ 깜짝 카드에…입장 뒤바뀐 여·야

중앙일보

2025.09.22 13:00 2025.09.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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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던진 ‘배임죄 폐지 선언’이 정치권에 기묘한 역설을 자아내고 있다. 민주당에선 배임죄 폐지 반대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국민의힘에선 찬성 목소리가 사라졌다.

배임죄는 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것을 알면서도 정상적인 기업 경영과는 다른 목적으로 회삿돈을 유용하는 기업인들을 단죄하는 데 활용돼 온 죄목이어서 전통적으로 경영계는 “폐지”를, 진보진영에선 “유지”를 주장해 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배임죄의 실익이 높지 않아 사기죄 형태로 규율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김용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란 시각과 “계주가 곗돈을 지급 안 할 때도 적용되는 게 배임죄인데, 전면 폐지는 과도하다”(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등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김 원내대표의 ‘선언’은 “형법상 배임죄는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시해 완화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었다”(당 경제형벌합리화TF 소속 의원)는 당 실무 단위의 진도를 뛰어넘는 전격적인 것이었다.

곧장 정치권에선 배임죄 폐지의 일반적 효과와 부작용을 둘러싼 논쟁이 아닌 ‘이재명 방탄 입법’ 공방이 불붙었다. 전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반기업 정당 민주당이 갑자기 왜 배임죄를 없애자고 할까”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배임죄 유죄 받을 것이 확실하니 배임죄를 없애버려 ‘면소 판결‘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 원내대표는 2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를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정치적 조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 검찰 출신 다운 한숨 나오는 발상”이라고 받아쳤다.

민주당의 배임죄 완화 논의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어져 온 1·2차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처리 등에 반발해 온 재계를 달랠 ‘당근’ 발굴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배임죄가 사라지면 이재명 대통령이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재판에서 주요 혐의(4895억원 배임)에 대해 면소 판결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배임죄 폐지의 부수 효과가 여야의 기류를 지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를 주장했을 때에도 적잖은 반대 목소리가 나왔던 민주당에서 김 원내대표의 폐지 선언에 반기를 드는 인사는 없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들은 이날 통화에서도 “11월 본회의에서는 배임죄 폐지 입법이 가능할 것”이라거나 “배임이라는 건 이미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폐지에 무게를 싣기 바빴다. 반대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시절인 2019년 당 차원에서 배임죄 폐지를 약속했던 국민의힘에선 공개적 찬성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배임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건 과하다는 의견이 여전히 당내에 적지 않지만 드러내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폐지 반대 의사를 내비쳤던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폐지에) 우려한다거나 반대한다는 식으로 몰고가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지난 7월 기업인의 배임죄 처벌을 완화하는 특례법을 발의했던 삼성전자 사장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배임죄가 기업의 경영 판단이나 자율성을 위축한다는 차원에서 완화 법안을 냈던 것”이라며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배임죄를 없애기 위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는 만큼 더 언급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배임죄는 민주당이 강화하자고, 국민의힘이 없애자고 해왔던 건데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건 정치적으로 왜곡된 논의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나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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