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미셸은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밝게 불타올랐다. 불은 꺼졌지만 그 열기는 아직 남아 있다. "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와 함께 1980년대 뉴욕을 풍미했던 그라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예술) 아티스트인 팹5 프레디(66)의 회고다.
미술가로 활동한 단 8년 동안 3700여점을 남겼다. 줄곧 그리고 썼다. 바스키아의 짧지만 뜨거웠던 예술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1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특별전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은 1980년작 ‘무제(자동차 충돌)’을 시작으로 1988년의 ‘에슈’까지 회화와 드로잉 70여점, 1980년부터 87년까지 직접 작성한 창작 노트 153장을 모은 전시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거리 예술인 그라피티의 리듬을 갤러리로 가져온 듯한 전복적 작품은 새로움을 찾는 미술계를 사로잡았고, 오늘날까지 미술 시장의 지배자로 그를 자리매김했다. 201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982년작 ‘무제’가 1502억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총 11개 섹션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의 첫 장면은 ‘거리를 스튜디오로’, 창문이나 나무판, 냉장고 등 재료를 가리지 않고 그린 바스키아의 초기작이 나왔다. ‘전사들과 힘 있는 인물들’에서는 한국 문화유산과의 대화를 볼 수 있다. 바스키아의 ‘전사’(1982)와 나란히 걸린 민화 ‘최영 장군’이나 바스키아의 잉크 드로잉과 마주한 제주대 박물관 소장 ‘행원리 봉향당 무신도’ 8폭 병풍도 동시대 미술 못지않은 조형미를 뽐낸다.
리움미술관 소장의 ‘무제(검은 인물)’도 걸렸다. 8살 때 길에서 농구공을 갖고 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비장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은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는 『그레이 인체 해부학』을 줬다. 이때 본 인체 이미지는 바스키아의 짧은 생을 지배한다. 두개골, X선 촬영한 듯 뼈가 비치는 인체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도 권투 선수 같은 반바지 차림의 인물 위에 흰 선으로 두개골ㆍ갈비뼈ㆍ팔뼈를 표현했다.
‘해골과 가면들’에서는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 소장의 ‘자화상’(1983)을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단어의 신전’, 전시장 한 방에 바스키아의 창작 노트 153페이지를 가득 걸었고, 중심에 단어와 상징이 빼곡한 대작 ‘무제’(1986)가 훈민정음 해례본과 마주 전시됐다. 삼각형의 꼭짓점 파란 배경에 흰 학이 자리 잡았고 주변에 박쥐·뱀·눈알을 그렸다.
총 12폭으로 이뤄진 최대 작품 ‘육체와 영혼’(1982~83)도 관객을 압도한다. 총괄기획 숨 프로젝트 이지윤 감독은 “작품을 마주하면, 20대 바스키아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공동 기획의 안나 카리나 호프바우어 박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시장에 와서 디테일을 보라"고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