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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없다” 김정은 보란듯…한·미·일 “완전한 비핵화 확고”

중앙일보

2025.09.23 01:21 2025.09.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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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외교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핵 포기 거부 의사를 밝힌 가운데 한·미·일 외교장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무상은 22일(현지시각) 제80차 유엔 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만나 회담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들어 3국 간 고위급 회의에서 공동성명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번 3국 외교장관회의는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우리더러 위헌 행위를 하라는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연설이 공개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뤄졌다. 3국 장관이 공동성명에서 비핵화 원칙을 다시 강조한 건 한·미·일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대답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3국 장관은 “장거리 미사일 등 북한의 군사역량에 대한 러시아 지원의 영향을 포함해 증가하는 북·러 군사협력에 심각한 우려”도 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뒤 발표된 두 차례의 3국 외교장관 공동성명(지난 2월 독일 뮌헨, 4월 벨기에 브뤼셀)에는 없었던 ‘장거리 미사일’이란 표현이 포함되는 등 보다 구체적 지적이 이뤄졌다. 북한은 이달 초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개발을 공식화하기도 했는데, 러시아가 북한에 관련 기술을 이전하는 정황이 포착됐을 가능성도 있다.



외교부, ‘북한 비핵화’ 아닌 ‘한반도 비핵화’로 표기

다만 비핵화 표현과 관련, 미묘한 입장 차이도 감지됐다. 외교부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3국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기로 했다”며 공동성명에서 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도쿄 정상회담 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고, 지난 7월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 외교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표현했다. 아직 이재명 정부에서 비핵화의 정의를 두고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3국 장관이 문서로 공동성명을 낸 뒤 한국 외교부만 굳이 다른 표현을 쓴 건 3국 간 온도 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핵 포기를 직접 압박하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에 북한이 반발하는 걸 정부가 의식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북한은 과거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을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핵우산 제거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핵 포기의 대상을 ‘북한’으로 규정한다.



공동성명, 제제 이행 필요성 강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가 지난 20-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 대통령이 북한이 핵 동결만 해도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힌 가운데 3국 장관 공동성명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함께 대응해야 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의 위반·회피에 단호히 대응함으로써 대북 제재 레짐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함께 대응”이란 표현은 제재와 관련해서도 3국이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어서다. 공동성명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국제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며 제재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선 두 차례 3국 외교장관 공동성명에 포함된 “북한 내에서, 북한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중대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번 공동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그 사이 3국 장관 중 조현 장관만 바뀌었는데,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빠진 건 한국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한편 미국 측은 성명을 통해 “핵 역량을 포함해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철통 같은 방위 공약”을 재차 강조했다.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이 한반도와 더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매우 중요함을 재확인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 등 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확장억제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한미일 3국 간 경제안보 협력 증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성명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도 기존과 비슷하게 유지됐다. “남중국해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위험하고 불안정을 야기하는 행위를 포함해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 “대만이 적절한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 등이다.

“대만 인근에서 불안정을 야기하는 행위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지난 4월 공동성명에 있던 ‘힘 또는 강압에 의한 어떠한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 등 표현은 담기지 않았다. 다음 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것일 수 있다.

3국 장관은 회담에서 경제안보 협력 및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공조 심화 방안도 논의했다. 조 장관은 회담에서 한국인 구금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 새로운 비자 제도 도입 등 미국 측의 각별한 조치를 당부했다. 이에 루비오 장관은 3국이 아닌 양자 차원의 문제이나 우호적 동맹관계 등을 고려해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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