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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남중국해에 中 수준 인공섬 건설…中 그래도 저자세, 왜

중앙일보

2025.09.23 02:02 2025.09.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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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중국 벤치마킹’에 열중하고 있다. 영유권 분쟁 과정에서 중국이 벌여온 ‘인공섬 건설’을 따라 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에서 ‘원조’를 추월할 만큼의 규모를 이룩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조용하다. 또 다른 영유권 분쟁국인 필리핀 선박엔 물대포를 쏘며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것과 상반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22일(현지시간) 중국의 이중 잣대엔 베트남의 높은 외교적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내 사우스 암초에 베트남이 세운 인공섬과 항만. 사진 CSIS

베트남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는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2021년 0.5㎢에 불과하던 스프래틀리 군도 내 베트남 인공섬 면적은 3월에 9.1㎢로 늘었다”고 밝혔다. 4년 새 이 지역에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 면적(14.2㎢)의 70%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보고서는 베트남이 스프래틀리 군도에 남아있던 모든 전초기지에서 매립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점유 중인 21개 암초·간출지(썰물 때 드러나는 땅) 모두 인공섬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AMTI는 “소규모 콘크리트 사격진지 정도만 있던 앨리슨 암초 등 8곳에 대해 올해 초부터 매립 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며 “이미 준설작업을 통해 중간 규모 인공섬으로 만들었던 웨스트 암초 등 3곳에서도 추가 확장 작업을 재개했다”고 분석했다. 신규로 매립 작업 중인 8곳의 총면적만 4.4㎢라는 점을 고려하면 베트남의 인공섬 크기는 중국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 인공섬은 규모뿐 아니라 군사 기지 기능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대형 군용기를 띄울 수 있는 길이 4㎞ 이상의 활주로와 대형 함정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도 추가 건설되고 있어서다.

스프래틀리 군도 내 바르크 캐나다 암초에 세워진 베트남의 인공섬. 활주로와 군수 창고가 포착된다. 사진 CSIS
베트남의 세력 확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중국은 관망에 가까운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FP는 “중국 정부가 AMTI 보고서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기자 질문에도 상투적인 논평으로만 답했다”고 짚었다. 실제 중국 외교부는 당시 “향후 필요한 조처를 해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양 권익을 지킬 것”이라고 밝히고 별도의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FP는 “남중국해에서 양측이 충돌할 수 있겠지만 대개 저강도로 수위가 조절되고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며 “2019년 이후 큰 사건 없이 평온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 중인 또 다른 나라 필리핀과의 마찰과 대조적이다. 지난 16일 중국 해경은 루손섬 인근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주변에서 필리핀 공무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중국 정부가 필리핀의 반발에도 스카버러 암초에 자연보호구역을 설정하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신재민 기자
8월에는 필리핀 연안경비대 함정을 추격하던 중국 해군 구축함과 해경 경비함이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상공에선 중국 군용 헬기가 필리핀 어업국 소속 소형 항공기를 3m 거리까지 근접 비행하는 일도 있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이들 충돌은 필리핀 밀어내기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국판 적대시 정책의 의도된 결과로 풀이된다.

FP는 필리핀의 친미, 베트남의 친중 노선이 중국의 선택적 강온 정책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필리핀의 경우 202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집권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대미 관계를 토대로 중국 견제 기조를 강화했다. 중국으로선 외교적으로 손을 떠난 카드로 여겨진 필리핀을 남중국해에서 힘으로 억눌러야 할 필요가 생겼다.

반면 대중국 유연 외교를 펼치는 베트남은 중국에 여전히 중요한 카드다. 최근 중국 전승절(항일 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대회)’에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했다. 베트남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 협의체 브릭스(BRICS) 파트너 국가의 지위도 얻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 국면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경제·통상 등 다수의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내 피어리 크로스 암초(중국명 융수자오)에 만든 인공섬. 활주로 등 군수시설이 눈에 띈다. 해방군보 공식 웨이보 캡처
중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영유권 문제에 한발 물러선 건 대미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일종의 실리적 선택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FP는 “베트남도 필요할 때 중국을 찾는다”며 “공산당 중심의 양국 공통분모 역시 이념적 기반에서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한다”고 평가했다.



이근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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