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맞대응 카드로 5년 8개월 만에 장외 투쟁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당내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초선은 물론, 중진 사이에서도 “명분도 없이 거리로 나가 중도층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어서다.
일요일인 지난 21일 동대구역에서 열린 첫 집회에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자 당내에선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7만명이 집결했다고 발표했지만, 경찰의 비공식 추산으로는 1만9000명에 그쳤다. 지난 2월 세이브코리아가 동대구역에서 개최한 집회에 모인 5만2000명(경찰 추산)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 것이다.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2월 세이브코리아 집회 정도의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동대구역을 첫 투쟁 장소로 삼은 것”이라면서도 “곳곳이 비어 있어 당황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중도층이 외면한 결과란 지적과 함께 당내 동요도 커지고 있다. 한 영남 지역 의원은 “장외 투쟁은 시민과 중도층이 호응해 집회에 세가 붙어야 하는 게 핵심”이라며 “그날은 주변 백화점이나 역사에 시민이 많았지만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대통령 지지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야당 탄압’ ‘정치 독재’ 같은 구호에 일반 시민이 호응을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집회 당일에는 한 비수도권 중진 의원이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 현 지도부가 결정한 ‘야당탄압·독재정치’란 구호에 문제를 제기하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특히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층을 끌어 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외려 ‘윤 어게인’ ‘부정선거’ 등을 주장하는 아스팔트 보수와 연대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데 대한 당내 우려도 크다. 국민의힘은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시절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의 선거법 개정안 강행 등에 맞서 1년 가까이 전국적인 장외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2020년 4월 총선에서 103석으로 대패하는 쓴 맛을 본 기억이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이 20% 초반대 지지율에 갇혀 있는데 거리로 나가 시민의 동참을 호소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뚜렷하다”고 했다.
장외 투쟁을 진두지휘해야 할 장동혁 대표의 령(令)이 서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구 집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몇몇 중진 의원들은 집회 시작 이후 자리를 뜨는 걸 봤다”며 “당에서 금지했던 ‘부정선거’나 ‘윤 어게인’ 깃발도 곳곳에 있었다”고 전했다. 당 지도부가 21일 장외 집회에 총동원령을 내렸지만, 소속 106명 의원 중 31명은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불참하기도 했다. 일부 중진들은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토로한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과거 ‘조국 사태’ 같은 투쟁 명분이 있거나 우리 당이 원내에서 더 이상 투쟁을 할 수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거리에 나갔던 것”이라며 “한참 원내에서 싸워야할 때 거리로 나가니, 앞으로는 뭘 할 건지 답답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28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2차 장외 투쟁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은 23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국정감사와 연말 예산 시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장외 집회를 지속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녹록지 않다”며 “원내에서도 출구 전략을 지도부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장동혁 대표는 이날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서울 여의도의 중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맞붙은 이후 26일 만이다. 이 자리에서 장 대표는 현안과 관련해 “조언과 지혜를 구하고 싶다”고 했고, 김 전 장관은 “잘하고 계시다”고 화답했다. 장 대표는 오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장관이 정치 경험도 풍부하시고 여러 전략도 많이 가지고 계신다”며 “당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여러 말씀을 들었고, 저희가 충분히 검토하면서 받아들일 말씀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시간 가량 오찬을 통해 민주당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 문제와 입법 독주 상황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내부 공지를 통해 25일 국회 본회의에 민주당 주도로 상정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전체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무한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최장 69일간 필리버스터를 하게 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25일 본회의에 69개 법안을 상정할 경우, 국민의힘은 1개 법안당 24시간씩 총 69일 간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종결 동의를 하면 24시간이 지난 후 표결을 통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 때 끝낼 수 있다.
송 원내대표는 23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검찰청 해체 등을 포함한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요즘 정부·여당을 보면 반대 목소리는 아예 묵살하는 것이 개혁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부 조직 개편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함께 논의하자는 야당의 충정을 정부·여당이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