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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대통령 지키는 현란한 기행

중앙일보

2025.09.23 08:24 2025.09.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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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정치 때문에 종종 실소하게 되는데, 이번엔 박지원 민주당 의원 덕분이다. 사실상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난 서영교 의원의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을 두둔하는 논리가 신박했다. “국회에서 같이 오랫동안 있었지만 (서 의원이) 가장 똑똑하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똑똑한지 모르나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건 한 번에 반박 가능하다. 서 의원이 윤석열 정부가 전투화·내복·팬티 예산을 깎았다며 “비정한 예산”이라고 공격한 일이 있다. 누군가의 발언을 재탕 과장한 거였는데 사실과 달랐다. 예산을 수백억원 삭감한 게 아니라 원가 하락에 따른 절감분 수십억원이 생겼다. 서 의원은 그러나 “물가가 다 올랐는데 왜 그것만 내려갔느냐”고 했다. 그는 최근 별건에서도 논리적으로 밀리자 “지금 대통령이 누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인지 누가 모르겠는가.

'검찰개혁'부터 대법원장 압박에다
배임죄 폐지…무리한 조치 쏟아져
단군이래 최대 권력, 과거에만 쓰나
이들 의원이 유난하지만, 이들만 유난한 건 아니다. 당 지도부도, 추미애 법사위원장도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 왜 이럴까. 이들의 현란한 기행을 농축하면 한 가지 사실이 추출된다. 바로 ‘대통령 지키기’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1400만605종의 미래를 보듯,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닥칠지 모를 모든 사법 리스크를 막겠다는 태세다.

우선 널리 알려진 ‘검찰 개혁’이다. 그간 검찰에 대한 ‘응징’이지만 동시에 장차 있을지 모를 재판에서 검찰의 대응을 제한하는 효과도 거둘 것이다. 수사 검사는 한직으로 몰았고, 공소를 담당할 부처의 힘을 뺐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은 도덕성이 흐릿한 이들의 말을 앞세워 소 취하도 압박하는 양동작전도 구사한다. 쌍방울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인데, 술·연어로 가리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검찰 개혁 입법 청문회에서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추미애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대통령에게 적용된 죄목(배임죄)도 없애려고 한다. 개선이 필요했는데 그걸 막아온 게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없애자고 하니 “이 대통령이 배임죄 유죄판결을 받을 게 확실하니 배임죄를 없애버려 면소 판결을 받게 하겠다는 것”(한동훈)이란 얘기가 나온다. 배임죄 폐지가 만일 재판 중인 사건에도 적용되도록 한다면 그런 의도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 없게 될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중지된 마당에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헌정 사상 유례없는 압박 조치들도, 대법관 증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겠다며 그중 22명을 이 대통령 임기 내에 임명하도록 한 법안은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판결에서 임명권자가 보이는 현 경향성을 감안하면 퇴임 대통령의 그림자는 꽤 오래 드리울 것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나름의 관련 장치를 해두었다. 정보의 교차점에 자신의 변호인 출신들을 기용했다. 대통령실 민정·공직기강·법무비서관에다 국가정보원의 기획조정실장 등이 그들이다. 요로 중의 요로다. 보상이라고들 말하는데 대비(對備)일 수도 있다.
왼쪽부터 이태형 대통령실 민정비서관,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 이장형 법무비서관. 중앙포토

이 정도로도 될 듯한데, 여권은 5년 후에도 (검사가 설령 있더라도)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 유지를 어렵게 만들거나 범죄를 없애고, 대법원에 가더라도 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판단하게 하려 한다. 다들 ‘헌정 사상 초유’란 꼬리표가 달린 무리한 조치들이다.

민주당은 크게 잘못하지 않는 한 유권자의 인적 구조나 ‘민주당 도우미’를 자처하는 국민의힘 때문에 오랫동안 원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국회 권력을 자신들이 쥐고 있는데 자당 대통령을 누가 괴롭힐 수 있겠나. 더군다나 지금은 단군 이래 최대 행정-입법권력이다. 왜 유난한가.

진중권 교수의 말을 변용하면 우리의 상상은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향해야 한다. 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여권은 대중의 상상을 과거로 데려가 잘못을 부정하고 은폐하고 변명하는 노력에 낭비하게 하고 있다. 그 집요함의 반의반만이라도 오늘에, 미래에 써달라. 진심이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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