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트럼프, 유엔 '맹비난'…"한 일이라곤 고장난 프롬프터·에스컬레이터뿐"

중앙일보

2025.09.23 09:43 2025.09.24 05:1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취임 7개월 만에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며 “내가 전쟁을 끝내는 끝내는 동안 유엔은 도움을 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유엔이 해야 할 일을 내가 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역대급 사기”라고 주장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석탄’ 등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일방적인 관세에 대해선 “공정하고 상호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54분간 계속됐다. 정상 연설은 통상 15분 안팎이 권고사항이다. 제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빨간 경고등이 깜빡거렸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한채 발언을 이어갔다. 그가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하고 국제사회의 노력을 비난하는 동안 주어진 시간을 훌쩍 넘겼다.



“유엔이 한 건 고장난 에스컬레이터와 프롬프터뿐”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단에 선 뒤 프롬프터가 아닌 인쇄해온 연설문을 펼쳐놨다. 그리고는 “프롬프터가 작동하지 않지만 이렇게(연설문을 보고) 하면 더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프롬프터를 조작하는 사람은 큰 곤경에 처할 거라고만 말하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설 시작 무렵 프롬프터가 작동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준비해온 원고를 펼쳐놓고 연설을 시작했다. AP=연합뉴스

그리고는 자신의 경제, 국경, 국방 등의 정책을 제시하며 “진정한 미국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수많은 국가들과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는 점을 성과로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나는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협상 타결을 돕겠다는 유엔의 전화 한통조차 받지 못했다”며 “유엔이 하는 일이라곤 강경한 어조의 서한을 보내는 것뿐이고, 서한에 대한 후속 조치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엔이 제공한 것은 고장난 에스컬레이터와 프롬프터뿐”이라며 재차 비꼬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3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장에 올라가던 도중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전쟁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이라며 “모두 내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게 진정한 상은 끝없고 불명예스러운 전쟁에서 수백만명이 죽지 않고 부모와 함께 자라날 아들딸이 살아남은 일”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자신을 공격하는 전쟁 자금을 지원”


당초 “취임 당일 끝내겠다”고 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 배경에 대해선 유럽 국가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석유를 계속 구매하면서 전쟁의 주요 자금원 역할을 하고 있다”며 “더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조차 러시아산 에너지와 에너지 제품 수입을 크게 줄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이런 사실을) 약 2주일 전에 알게됐고, 전혀 기쁘지 않다”며 “그들(나토)은 자신들에 대한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러시아와 싸우면서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구매하는 것은 그들(유럽)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내게도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러시아에) 강력한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고, 관세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 자리에 모인 유럽 국가 모두가 동일한 조치를 함께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밖에 서방국들이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데 대해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의 만행에 대한 너무 큰 보상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마치 갈등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이 기구(유엔)의 일부 나라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일방적으로 인정하려고 하고 있다”며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서방국들이 최근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한 것에 비판을 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연설을 하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유엔은 국경에 대한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


유엔을 향해선 자신의 핵심 정책인 국경폐쇄 정책과 관련해 불법 이민자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은 지난해 미국으로 향하는 62만 4000명의 이민자들에게 3억 720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현금을 지원했다”며 “유엔이 서방 국가들의 그들의 국경에 대한 (불법 이민자들의)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 옆엔 '한국'이라는 표시가 된 의자가 비어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무능한’ 바이든 행정부 4년간 2500만명이 미국으로 유입됐지만 내가 이를 완전히 차단했다”며 “유엔은 침략을 막아야지, 침략을 조장하거나 자금을 지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유럽에 대해서도 “전례 없는 규모의 불법 이민자 군단에 침공당하고 있다”며 “여러분도 미국처럼 국경을 통제할 권리가 있고 자국에 들어오는 이민자의 숫자를 제한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교도수 수감자의 과반이 외국인 또는 이민자라고 한 유럽평의회 자료를 인용하며 “그들은 친절에 대해 범죄로 보답하고 있다. 개방된 국경이란 실패한 실험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전세계에 저지른 최대 사기극”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에 대해선 “전세계에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유엔은 1989년에 ‘10년 안에 지구온난화로 전체 국가들이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지구 냉각이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그

그러면서 “이 ‘그린 사기’(green scam)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탄소 발자국도 악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꾸며낸 사기이며, 그들은 완전한 파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미국은 ‘재생에너지’라는 거짓 이름의 에너지를 없애고 있다”며 “(풍력에너지를 위한)거대한 풍차들은 정말 한심하고 형편없고, 운영 비용도 엄청나게 비싸다. 에너지는 돈을 벌어야할 수단이지 돈을 잃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은 자국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는 풍차(풍력에너지 발전기)를 왜 전세계에 수출하겠느냐”며 “그들은 석탄과 가스 등 거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풍력 터빈을 파는 것만 좋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인근 시위에서 경찰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묘사한 플래카드를 든 시위자의 손을 묶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미국은 깨끗한 석탄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라며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할 준비가 돼 있고, 전세계에 에너지를 수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관세는 미국의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


트럼프 대통령은 무차별적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선 “미국의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역에 대한 규칙을 따랐던 국가들의 공장은 모두 규칙을 어긴 국가들에 의해 모두 약탈당했다”며 “그래서 다른 국가들이 했던 것처럼 관세를 부과한 것”이라고 했다.
제80차 유엔 총회가 열린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시위대가 42번가 교차로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이어 “관세를 통헤 미국의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고 있다”며 50%의 보복성 관세를 부과한 브라질에 대해 “미국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검열하고 탄압하고 미국 내 정치적 비판자를 표적화하는 등 전례 없는 방식으로 침해한 데 대한 대응으로 대규모 관세에 직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앞서 유엔총회 연설을 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다음주에 만날 것에 합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핵보유 인정을 전제로 대화에 응할 뜻을 밝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발언 등 북핵과 한반도정세에 대한 별도 언급은 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반도와 주변의 정세추이를 엄정히 분석하며 공화국정부의 원칙적인 대미·대한 입장을 천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강태화([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