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적의 해운사 로얄 바겐보르그(Royal Wagenborg)는 현재 캐나다 북쪽 해역 북서항로(NWP)를 오가는 유일한 상선이다. 지금까지 41차례 이곳을 오갔다. 북서항로는 최근 상업 운항을 시작한 러시아 북쪽 북동항로(NEP)보다 개발이 더디다. 북동항로보다 섬이 많고, 수로가 복잡한데 여름철 항로가 열리는 기간이 짧은 것도 단점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운항 환경이 좋아진다면 잠재력만큼은 북동항로 못지않다. 부산과 뉴욕을 기준으로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는 루트보다 운항 거리를 약 4500㎞가량 단축할 수 있어서다.
캐나다는 지난달 ‘북극 경제 및 안보 회랑’이란 이름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처칠항 등 주요 항만을 현대화하는 작업과 함께 고속도로와 철도 노선을 정비해 캐나다 주요 지역과 연결하는 초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북서항로 중간쯤에 위치한 그래이스만에 심해항을 건설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북극 인근에 매장된 천연가스와 광물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려는 중장기 전략과 맞물려 있다.
북극 자원과 해상 운송 인프라 선점을 위한 신(新) 영토전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변국이 아닌 한 접근이 어려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뱃길이 열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非)북극권 국가도 탐내는 영역이 된 이유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권(북위 66.5도 위쪽의 바다와 육지)엔 전 세계 미개발 천연가스의 30%, 석유의 13%가 매장돼 있다. 천연가스를 석유로 환산하면 전체 추정 매장량은 3900억 배럴에 달한다. 배럴당 70달러로 계산해도 약 27조 달러(약 3경7600조원) 규모다. 현재 북극 논의를 주도하는 북극이사회에는 미국·러시아 등 8개 회원국 외에 한국·중국·독일 등이 옵서버 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가장 앞선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8년 '중국의 북극 정책'이라는 백서를 발표한 후 북극 자원 개발과 항로 개척에 박차를 가해 왔다. 특히 백서에서 자국을 ‘근(近) 북극 국가(near-Arctic state)’로 규정하며, 북극 문제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극을 일대일로(一帶一路) 범위에 포함해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이때 나왔다.
중국은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북동항로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2013년부터 국영선사 COSCO를 중심으로 수십 차례 북동항로를 운항했다. 올해 러시아 아르한겔스크항에는 중국 선박이 20회 입항할 예정이다. 전년 대비 약 2배 증가한 수치다. 아르한겔스크 주 알렉산드르 치불스키 주지사는 “러시아를 중국 항만과 북동항로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는 이미 효율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극권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생산ㆍ수출하는 러시아의 ‘야말 LNG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지분 구조를 보면 중국 자본 비중이 30%로 러시아(50%) 다음이다.
인도도 러시아와 북극 에너지 협력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LNG·석유 등을 포함한 북극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는 10년 내 북극이 새로운 지정학적 충돌 지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올해 7월 처음으로 북극 전략을 수립했다. 그린란드와 스발바르 제도(노르웨이령) 등을 전략 우선 지역으로 설정하고, 극지용 장비 개발 투자를 늘린다.
독일과 영국은 북극 연구 측면에서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은 2020~2022년 쇄빙연구선 폴라슈테른호를 활용해 겨울철 해빙을 연속 관측하는 국제 공동 연구를 주도했다. 영국은 북극권 원주민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동 연구 ‘시누크 프로젝트’로 북극이사회에서 호평을 얻었다. 일본 극지연구소도 지난 4월부터 북극권 연구 강화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은 국내 유일의 쇄빙선 아라온호를 활용해 다국적 연구 등에 참여하면서 북극권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정지훈 한국북극연구컨소시엄(KoARC) 사무총장은 “북극권 원주민들은 역사적인 요인으로 인해 외부에 대한 경계가 강하다”며 “북극권 활동을 위해서 그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필수적이고 가장 빠른 길은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