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소액결제 사건이 서울 서남권 등 특정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 배경과 관련해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가 “집에서 가까운 지역을 다녔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에 특정 지역만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며, 어느 지역이든 관계없이 범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2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서울 금천·경기 광명 등에 초기 피해가 집중된 이유와 관련, 소형 기지국을 차량에 싣고 다닌 피의자 A씨(48·중국 국적)에게서 “집이 근처라서 해당 지역을 돌아다녔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사건이 불거진 초기 무단결제 피해가 서울 서남권과 인근 경기·인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인근 기지국이나 대리점 정보 유출 등을 비롯한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A씨 진술이 사실이라면, 범행을 지시한 윗선은 지역이 어디든 무관하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아 정보통신망 침해 범죄를 계획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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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에서 시작, 동작·서초까지로 확대
지역별 범행 발생 시기 역시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앞서 최초 피해 발생 시점은 지난달 중순 이후로 알려졌지만,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비슷한 피해 사건에 대해 유사성을 검토한 뒤 지난달 5일 서울 금천, 8일 동작, 9일 서초에서 발생한 소액결제 피해 등도 A씨 혐의로 병합했다. A씨가 지난 5일 먼저 집 근처인 금천 일대를 돌아다녔고, 며칠 뒤 동작과 서초 등 주거지에서 더 먼 곳까지 옮겨 다니며 범행을 벌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범행 시작 시점도 앞당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 피해 신고에 대한 유사성을 검토 중이며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최초 범행 시점은 지난 5일보다 하루 이틀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범행 초기로 추정되는 8월 5일부터 20일까지 2~9명으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무단 결제 피해자 수는 A씨가 경기 과천 일대를 운행한 21일을 기점으로 폭증했다. 경찰이 집계한 피해자와 피해 액수는 발생지를 중심으로 광명 124명(8182만원), 서울 금천 64명(3860만원), 과천 10명(445만원), 부천 7명(580만원), 인천 부평 4명(258만원), 서울 동작 4명(254만원), 서울 서초 1명(79만원) 등 총 214명, 1억3650여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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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대포폰 이미 중국 반출
경찰은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휴대폰 부정결제 다중 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A씨를 특정했다. A씨는 지난 5일 KT가 이동식 펨토셀 접속을 차단한 당일, 윗선 지시를 받아 범행을 멈추고 사용한 노트북과 대포폰을 한 상자에, 나머지 27종 펨토셀 장비를 또 다른 상자에 담아 무역업체에 맡겨 보따리상을 통해 중국 반출을 시도했다.
A씨는 9일 중국으로 출국해 16일 귀국했는데, 그 사이인 13일 노트북과 대포폰은 중국으로 배송됐고 나머지 장비는 귀국 당일 평택항에서 반출 직전 압수됐다. 범행에 사용한 증거를 인멸하려다 꼬리를 잡힌 것이다. 경찰이 압수한 불법 기지국 펨토셀 장비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본체와 A4 용지보다 큰 증폭기와 안테나로 이뤄졌다고 한다.
경찰은 노트북과 대포폰에 휴대전화 무단 결제 원리를 규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을 걸로 추정한다. 압수한 펨토셀 장비는 A씨에게 조립하게 하고 작동 직전까지 시연했으나 추가 검증이 필요한 상태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노트북은 켜라고 할 때 2번 켰고, 나머지는 노트북을 켜지 않은 상태로 장비만 구동하고 아파트 담장이나 주차장에서 대기했다”고 진술했다.
A씨와 함께 구속된 B씨(44)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각각 텔레그램으로 윗선 지시를 받았다고 자백했다. B씨는 윗선으로부터 모바일상품권 바코드를 받아 백화점 상품권으로 바꾼 뒤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고 환전소에서 위안화로 바꿔 중국 대포 통장 계좌로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총 2억여원을 환전해 1000만원을 수수료로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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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피해액은 광명서 이틀 걸쳐 147만원
피해자들 중엔 이틀에 걸쳐 무단 결제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 경기 광명시에 거주하는 한 피해자는 지난달 27일과 지난 4일 이틀에 걸쳐 147만2000원 무단 결제를 당해 피해자 중 가장 최다액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새벽 시간대 소액 결제 한도가 100만원으로 상향된 뒤 2~3차례에 걸쳐 모바일상품권이 결제돼 요금명세서에 소액결제 금액이 남았다고 공통된 피해 진술을 하고 있다.
경찰은 25일 A씨를 정보통신망법상 침해, 컴퓨터 등 이용사기, 전파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구속 송치한다. B씨에 대해서는 컴퓨터 등 이용사기,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 송치한다. B씨의 환전에 도움을 준 환전소 주인 C씨(60대)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