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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차남’ 김홍업 별세…‘DJ와 함께 춤을’ 기획한 DJ의 일등공신

중앙일보

2025.09.24 00:42 2025.09.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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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인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고인이 2023년 서울 마포구김대중도서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장진영 기자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6·25 전쟁이 발발한 뒤인 1950년 7월 전남 목포의 방공호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생을 DJ의 아들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살았다. 대신고와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20대 후반부터 DJ, 모친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었다.

유신 시절인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DJ가 투옥되자 고인은 이희호 여사를 도와 재야 인사들과 함께 구명 운동을 펼쳤다. 당시 고인은 입에 검은 십자 테이프를 붙인 ‘침묵시위’를 기획했고, 이는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는 촉매제가 됐다는 평가다. 신군부가 들어선 뒤에는 정권의 타깃이 돼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당시 시위 배후 조종 혐의로 지명수배된 것이다. 3개월간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체포된 고인은 70여일 동안 고문을 당하며 험난한 세월을 보냈다.

1983년 5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의 에머리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차남 고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오른쪽), 삼남 김홍걸 현 의원(왼쪽)과 찍은 기념 사진.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이후 고인은 1982년 DJ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해 해외에 한국 인권 실태를 알렸다. ‘미주 인권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며 존 케리, 에드워드 케네디 등 미 정계 유력 인사와 직접 교류하며 한국 민주화 운동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1985년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받은 김근태 전 의원 사건의 진상을 부인 인재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육성으로 증언해 폭로할 당시엔 고인이 녹음 테이프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하기도 했다.

청춘을 부모와 함께 투쟁하며 보낸 고인은 1997년 대선 승리로 DJ 정부가 출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고인이 설립한 정치 기획사 ‘밝은 세상’은 당시 인기 그룹 DJ DOC의 노래를 개사한 ‘DJ와 함께 춤을’을 만들었고, 역대 선거 광고 역사상 최대 성공작으로 꼽힌다. 김대중평화센터는 “DJ는 고인이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DJ 재임 시절 고인은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기도 했다. 각종 이권 청탁을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징역 살이를 했다. ‘DJ의 비서실장’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DJ는 자신 때문에 자식들이 고초를 당했다고 아파했다”며 “고인이 검찰 짜맞추기 수사로 유죄를 판결받자 (DJ가) 사법부 개혁을 주장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가석방돼 2007년 4월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기도 했지만 DJ의 고향(신안)에서 당선된 탓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고인은 2009년 DJ 서거 이후에 DJ 정신과 유산을 계승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현 김대중재단)’를 설립하고, 2019년 이희호 여사마저 떠난 뒤에는 유지를 받들어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았다. 고인의 마지막 공개 행보는 지난 18일 열린 DJ 서거 16주기 추모식 참석이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선련씨, 아들 종대·종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김대중평화센터와 김대중재단이 주관한다. 장례위원장은 남궁진 전 문화부장관, 집행위원장은 배기선 김대중재단 사무총장이 각각 맡았다.



이찬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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