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한 건 한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개도국 지위 주장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의 중국에 대한 불만 사항 중 하나였는데, 이번 중국의 포기 선언으로 미·중 분쟁 완화 가능성이 생겼다”며 “중국의 WTO 협정상 의무가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특히 무역 원활화, 보조금, 반덤핑, 전자상거래 등 20여 개 WTO 협정 전반에 개도국 특혜 조항이 들어 있는데, 이번 포기 선언으로 중국은 한국 등 선진국과 동등한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한국 입장에선 세계 무역 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농식품·소비재 수출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고, 중국 내 한국 기업의 기술 유출과 지식재산권 보호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이번 조치로 미·중 무역 분쟁이 완화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통관 절차 간소화와 투명성 제고, 회원국 간 협력 강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무역 원활화 조치가 중국에서 개선될 경우 한국 기업에도 긍정적이다. 중국의 반도체·전기차·철강 등 제조업 보조금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견제도 제도적 바탕 아래 강화될 수 있다.
다만 중국은 당장 모든 개도국 특혜를 포기하겠다고 확실히 선언한 건 아니다. ‘앞으로 협상에서 주장하지 않겠다’는 쪽에 가깝다. 이 때문에 향후 구체적인 협상 과정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전쟁으로 촉발한 각국의 보호주의 강화로, 다자주의에 기반을 둔 WTO 체제가 사실상 무력화한 상황이어서 중국의 이번 조치가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도 당장의 손해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으로 볼 수 있다”며 “중국은 이번 선언으로 미국과 관계 개선 명분을 쌓으면서, 동시에 WTO를 지키는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