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체육을 이야기할 때 곧바로 떠올리는 종목 중 하나가 족구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회사나 친목단체 야유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참여한 경험이 있다. 공 외에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경기 규칙까지 간단해 ‘국민 스포츠’로 제격이다.
그런 족구가 요즘 달라졌다. 축구 못지않은 피라미드형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족구는 앞서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승강제 지원 종목에 선정됐다. 그 이후 질적·양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기준 J1(1부)리그부터 J6(6부)리그까지 6개 디비전이 갖춰졌고, 성적에 따라 상위리그로의 승격과 하위리그로의 강등이 이뤄진다. 전국 규모 리그부터 지역별(시·군·구) 리그까지 135개 리그에 속한 족구팀이 1322개다. 내년에 계획대로 J7(7부)리그가 출범하면 저변은 더욱 탄탄해진다.
지난 23일 인천 서구의 한 족구경기장에서 만난 J2(2부)리그 소속 다산하우징 족구팀의 왼쪽 수비수 조현승 씨는 세팍타크로 선수 출신이다. 별도의 생업(공항 탑승교 운전사)에 종사하면서 족구 선수 생활을 병행한다. 족구에 푹 빠진 조씨는 관련 콘텐트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 적이 있다. 그는 “예전엔 띄엄띄엄 열리는 각종 대회 일정에 맞춰 동료들과 발을 맞춰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족구에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훈련부터 경기까지 모든 게 체계적으로 바뀌었다”며 “실력을 갖추면 최상위 디비전까지 제약 없이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더 높은 무대를 지향하게 됐다. 내 삶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팀 동료인 공격수 박성학 씨는 “승강제 도입 초창기만 해도 ‘팀들이 지역별·연령별로 나뉘어 재미있게 잘하는데 왜 굳이 실력 순으로 전국 석차와 등급을 매기려 하느냐’고 반발하는 분이 제법 있었다”며 “디비전 시스템이 뿌리를 내린 현재는 ‘디비전 승격을 위한 도전이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며 좋아하는 분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승강제 도입 이후 족구는 체계화된 스포츠로서의 외연을 갖춰가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전국체전의 시범종목으로 채택돼 참가 중이다. 향후 정식종목이 되면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등이 운영하는 엘리트팀 창단이 이어질 게 명약관화하다. 이를 통해 디비전 시스템의 피라미드 최상단을 튼실하게 채울 수 있을 전망이다.
건설업체 다산하우징의 대표이자 동명의 족구팀을 창단해 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최도영 단장은 “족구 선수 중 별도의 직업을 갖지 않고 이 운동 만으로 먹고 사는 선수들은 극소수에 그친다”면서 “족구 발전을 위해 꾸준히 후원하는 입장에서 더 많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족구팀 창단 또는 후원에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면서“족구는 운동을 넘어 산업과 문화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종목”이라고 강조했다.
도전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대재 대한민국족구협회장은 “생활체육 영역에서는 족구가 오랜 기간 1~2위 수준의 인기를 누려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세계화’를 핵심 키워드로 두고 진화를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면서 “이르면 내년부터 아시안게임 종목군에 합류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예정이다. 만약 2036년 하계올림픽을 전북특별자치도가 유치할 경우 개최국 지정 종목에 포함해 글로벌 종목으로 도약하는 게 다음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축구 월드컵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 국제대회를 대한민국 주도로 만들고픈 꿈이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족구의 글로벌 성장을 위해 경기 규칙과 진행 방식을 포함한 기존의 틀을 과감히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와 같은 4인제뿐만 아니라 2·3인제를 추가 도입하고, 공의 크기를 바꾸거나 규칙을 개정하는 등의 변화 노력을 통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적합한 경기 방식을 찾아 나갈 예정이다.
전병욱 협회 승강제 총괄 담당자는 “승강제 실시 전까지는 연간 5억~7억원이던 협회 예산이 실시 이후 연간 20억원 수준인 문체부 지원금을 포함해 60억원 정도로 늘었다”며 “승강제가 생활체육을 활성화하는 유용한 방안이 될 거라는 문체부의 기대에 공감한다. 승강제 도입을 고민 중인 다른 여러 종목에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