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실적 풍향계’로 불리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지난 6~8월 실적에서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요가 급증한 효과다.
23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2025회계연도 4분기(2025년 6~8월) 매출이 113억2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으며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였던 111억5000만달러를 웃돌았다. HBM에 들어가는 D램의 가격·수요 모두 상승세를 타면서 매출의 79.3%가 D램에서 나왔다. 영업이익도 126% 늘어난 39억6000만달러로, 이 역시 컨센서스(36억7000만달러)를 상회했다.
HBM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HBM이 포함된 클라우드메모리 사업부 매출이 45억43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13.6%나 급증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4분기 HBM 매출이 거의 20억 달러로 늘어났다”고 공개하며 “연 매출로 환산시 80억 달러 규모”라고 덧붙였다. 이어 “HBM 고객사가 6곳으로 확대됐다”라고도 밝혔다.
마이크론은 이달부터 시작된 2026년 회계년도 실적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1분기(2025년 9~11월) 실적 가이던스(전망치)로 매출 122억~128억달러를 제시했다. 월가의 예상치(119억1000만달러)보다 높다.
특히, 마이크론은 6세대 제품인 HBM4의 성능을 자신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HBM4는 업계 최고 수준인 초당 11기가비트(Gb)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제공할 수 있다”라며 “2026년 상반기에 첫 출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증권가에서 ‘마이크론의 HBM4 성능이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초당 10Gb에 못 미쳐 품질 테스트에서 탈락했다’는 설이 퍼졌는데, 이를 공식 부인한 것이다. 메흐로트라 CEO는 “마이크론은 미국 내 유일한 메모리 제조업체로서, 다가올 인공지능(AI) 산업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이크론의 실적을 지켜본 한국 반도체 업계는 복잡한 심경이다. ‘메모리 훈풍’을 확인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마이크론의 HBM 약진은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이날 마이크론은 “2025년 1~12월 D램과 낸드의 수요가 기존 전망보다 커지고 있다”며 “당분간 시장에서 D램 공급 부족이 계속될 것이며, 생산을 더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기준 DDR4 8Gb (1Gx8) 3200의 평균 현물가격이 연중 최고치인 5.868달러를 기록하며 D램 가격은 고공 행진 중이다.
그러나 HBM4 수주를 둘러싼 3사의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쟁이 뜨거울수록 HBM 가격 하락 요인도 커질 것”이라며 “특히 HBM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에 불리한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SK 하이닉스 62%, 마이크론 21%, 삼성전자 17% 순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2분기 점유율은 41%로 2위였으나 1년 새 마이크론에 2위를 내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음달 3분기 실적발표를 한다. 증권사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3분기 영업이익을 5조~6조원, SK하이닉스는 10조원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