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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의 음식과 약] 트럼프와 타이레놀

중앙일보

2025.09.24 08:14 2025.09.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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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부가 타이레놀을 먹으면 위험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자녀의 자폐 위험이 증가하니 못 버티겠다고 느끼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 중에 이 약을 쓰지 말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무리한 주장이다. 임신 중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에 태아가 노출된다고 해서 자폐스펙트럼장애 위험이 증가한다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는 없다.

지난 8월 발표된 미국 연구 논문에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자폐 위험 사이의 연관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긴 했다. 이전 연구 46건을 검토한 결과, 27건은 임신부의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녀의 자폐 또는 ADHD 위험 증가 연관성을 보여줬고, 9건은 연관성이 없었으며, 4건은 보호 효과를 시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관찰연구여서 인과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한계를 해당 연구의 저자도 인정했다. 위험이 약 사용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임신부가 약을 사용하도록 만든 발열, 통증, 염증 같은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임신 중 발열은 무조건 참기만 하면 될 일이 아니다. 임신 초기 발열은 태아의 선천성 기형 위험 증가와 연관되고 열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조산 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다. 병·의원에 방문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

임신 중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뉴스1]
트럼프의 주장과는 반대로 전문가들 대다수의 견해는 임신 중에 타이레놀 사용이 안전하다는 쪽이다. 다수의 신뢰할 만한 연구에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 ADHD, 지적 장애 위험에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250만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스웨덴 연구 결과 처음에는 작은 연관성이 있어 보였지만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를 비교하는 식으로 분석하자 그런 연관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닌 유전적 특성과 같은 다른 요인이 자녀의 자폐스펙트럼장애 위험을 증가시켰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약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는 치료하지 않을 때 위험과 치료할 때 유익을 비교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통증과 발열을 치료하지 않으면 임신부와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다. 이부프로펜, 나프록센과 같은 소염진통제는 임신 20주 이후에는 특히 태아에게 해가 될 수 있어서 피하는 게 좋다. 의사와 상담하여 임신 중 해열진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아세트아미노펜은 안전성 면에서 제일 나은 선택이다. 세계보건기구와 유럽의약품청이 트럼프의 주장을 즉각 반박한 이유다. 영국 정부도 성명을 내고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여전히 안전하다고 밝혔다. 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필요할 때 단기간 복용하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강과 관련해서는 정치인보다 의사, 약사, 과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현명하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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