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1년 말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고위 인사를 만났다. 남북이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의 답방 문제를 물어봤다. 정부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김 위원장의 초청을 추진할 때였다. 그의 답은 단호했다. “전 세계 정치인은 오직 장군님(김 위원장) 한 분 뿐이오. 같은 민족의 잔치이긴 하지만 그런 자리에 장군님을 가시게 할 수는 없소. 대신 섭섭치 않게 할 거요.”
자신들이 ‘최고존엄’으로 여기는 최고지도자가 다자 외교 무대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라는 뜻이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무산됐고, 북한은 선수단 파견은 물론 만경봉-92호에 응원단 193명과 취주악단 150명을 부산에 보냈다.
김정은, 선제 대응 주문
외교·군사 공세 나설 듯
낯선 북한 등장 대비를
북, 중·러만으론 한계
#2. 2003년 6월 30일. 개성 공단 착공식 때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오찬 뒤 남북 회담 때 북한 대표로 나왔던 인사는 조명균 당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의 양복 소매를 붙잡고 한적한 곳으로 갔다. 북한 당국자는 “(서울에) 내려가서 쌀이랑 비료랑 (대북)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잘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원이라는 단어, 사전에서 지우라” 1980년대 말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전환 이후 북한은 문을 꽁꽁 닫았다. 북한이 ‘사회주의 형제국’이라 여기던 나라들이 자본주의로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1994년)하고, 이후 가뭄과 대홍수 등 자연 재해가 겹치며 북한의 식량난은 가중됐다. 스스로 ‘고난의 행군’, ‘사회주의 강행군’이라 부르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북한은 비료와 식량을 한국에 의지하며 국방장관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 남측의 요구를 수용했다.
20여 년이 지나 북한은 한국을 손절하고 나섰다. 김정일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리더십이 바뀌기도 했지만, 북한 경제의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진행중이지만, 북·중 교역량은 확대일로다. 러시아는 밀가루 등의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유엔에서 금지한 북한 식당과 북한 인력 공급 회사의 운영도 허용했다. 북한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한 대가로 북한에 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대북 제재의 뒷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2023년과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전년 대비 3.1%, 3.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던 쌀이나 비료 같은 대북 경제 지원이 더는 유인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사전에 지원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지우라”며 한국에 손을 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나아가 김정은은 2023년 말 한국과 절연을 선언했다.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3차 회의(정기 국회 격)에선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통일은 애국이요, 분열은 매국”이라던 선대 지도자들의 유훈과는 달리,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냐”며 “결탄코 통일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그동안 북한은 남북 관계를 단절할 때 아무런 언급 없이 침묵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김 위원장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수시로 나와 아주 ‘친절’하게 남북 관계를 끊는 이유를 반복해 설명하고 있다. 2022년 8월 “제발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살자”고 했던 김여정은 올 7, 8월엔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을 중단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 조치를 평가절하한 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주문했다. 북한의 의도가 완전한 절연인지,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조건을 주문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의 말 한 마디가 헌법보다도 우선한다는 북한 체제의 속성을 고려하면 21일 김정은이 직접 나서 ‘선’을 분명히 그은 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남북 지도자의 상반된 메시지 이재명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유엔 연설에서 “상대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 적대행위를 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남북의 지도자가 이틀 간격으로 각각 ‘협력’과 ‘절연’이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발신했다. 어쩌면 김정은이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고 선제적으로 나섰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19일 외무성 국장급 회의에 김여정을 보내 자신의 대외전략을 전달하고, 이를 공개했다. “적수국들에 외교적으로 선제대응하고 급변하는 지역 및 국제지정학적 상황을 우리의 국익에 유리하게 조종해 나갈 것”이란 게 핵심이다.
자신들의 ‘최고존엄’이 여러 지도자중 한 명으로 대접받는 곳에 갈 수 없다던 기존의 설명과 달리, 김정은이 지난 3일 베이징 천안문 성루에 오른 것도 선제 대응의 일환일 수 있다. 오는 29일 유엔 총회 일반 연설에 외무성 고위인사를 7년 만에 파견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김정은이 시도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의 의미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북한을 상대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의 경제 수준이 남한 우위로 역전됐던 197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언제나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대남 정책을 펴왔다. 그랬던 북한이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기발한 상황을 조성한다면 한국으로선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20년 전 북한의 경제 수준을 정책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대북 정책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베이징을 찾은 걸 정상국가화의 신호라는 식으로 오해한다면 우리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중국어 통역 여성을 아버지를 따라온 김주애(추정)를 챙기는 인물이라며, 이미 후계자가 확정됐다는 식의 해석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선입견은 금물이다.
최근 TV카메라에 잡힌 유엔 회의장의 북한 대표단 의자에 군데군데 해진 흔적이 보였다. 어쩌면 그게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상일지 모른다. 아무리 자신들이 선제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을 펴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 만으론 반쪽일 수 밖에 없다. 김정은도 미국과의 관계를 절연이 아니라 ‘장기전’이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이 향해야 할 방향은 따뜻한 남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