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 7번 출구. 최근 서울시가 도입한 수상 교통수단인 한강버스 잠실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다. 이곳에서 한강시민공원 쪽으로 12분 남짓 걸어가니 3층짜리 선착장 시설이 나타났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성인 남자의 보통 걸음으로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선착장 앞에는 “한강버스 9월 18일 출발합니다”라고 적힌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느긋하게 가을 정취 느끼면서
63빌딩·노들섬 등 한강변 관람
선착장엔 카페·편의점 등 운영
부대시설 성패에 사업성 달려
“한강서 대중교통 정시성 구현”
소요 시간 지하철보다 더 걸려
이날은 한강버스 운항 개시 이후 엿새째면서 화요일이었다. 첫배의 출발 시간(오전 11시)이 1시간가량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승객이 몰려드는 모습이었다. 가을 날씨에 맞춘 듯한 편안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나들이용 모자를 쓴 시민들이 많이 보였다. 자전거용 헬멧에 운동복을 입은 ‘라이더족’(자전거 이용자)도 눈에 띄었다.
파란 재킷을 입은 직원들이 개찰구 앞에 서서 승객들에게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승객이 계속 몰려들자 첫배는 만석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배차 간격은 1시간 30분이다. 한강버스는 수상 안전을 위해 입석을 금지하고 모든 승객이 좌석에 앉도록 하고 있다.
뱃머리에서 강변 관람 가능
기자가 탄 배는 한강버스 101호 경복궁호, 탑승정원은 199명이었다. 배 안의 좌석 배치는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떠오르게 했다. 창가 쪽과 통로 쪽으로 좌석 구역이 나뉘었는데 한강이 잘 보이는 창가 쪽이 인기를 끌었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간격은 비행기처럼 좁은 편이었다. 뒷좌석 승객이 몸을 움직이면 그 느낌이 앞좌석에도 전달될 정도였다.
뱃머리에는 강바람을 맞으며 한강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서쪽으로는 남산의 N서울타워, 동쪽으로는 잠실의 롯데월드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를 지나갈 때는 노들섬과 여의도 63빌딩이 가깝게 보였다. 날씨가 좋을 때는 유람선을 탄 듯한 낭만을 느낄 만했다.
원래는 승객들이 뱃머리로 나가지 못하게 선내 출입구를 닫으려고 했지만, 지난 7~8월 시범 운항 때 시민들의 요구로 계획을 바꿨다고 한다. 대신 안전을 위해 기존 1m였던 난간의 높이를 1.3m로 높였다.
캔커피·베이글 등 간식도 판매 배 안의 간식 판매대에선 캔커피와 베이글·츄로스빵을 팔았다. 좌석별로 설치된 접이식 테이블은 비행기 이코노미석 테이블보다 약간 작은 느낌이었다. 간단한 간식을 먹거나 스마트폰을 올려두기엔 무난한 크기였지만, 서울시가 홍보한 것처럼 노트북 작업을 하기엔 다소 불편했다.
잠실에서 가족과 함께 관람 목적으로 탔다는 이재홍(73)씨는 “강 가운데에서 주변을 보니 서울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면서 시야가 훨씬 넓어진 느낌”이라며 “진작에 이런 배가 다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잠실에서 망원 선착장으로 간다는 허유혁(33)씨는 “배 위에서 한강의 운치를 느끼며 주변을 구경하는 게 신선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만 운항 시간이 오래 걸려서 출퇴근용으로 이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선내 소음과 진동은 승객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였다. 뒤쪽 좌석으로 갈수록 엔진의 소음이 심해졌다. 시범 운항 때는 엔진 소음을 덮기 위해서인지 음악을 시끄럽게 틀었다는 승객 후기도 있었지만, 이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배를 선착장에 가까이 붙일 때는 출렁출렁 흔들림이 느껴졌다.
운항 사흘 만에 승객 1만 명 넘어
이번 주는 평일에도 가을 나들이 승객이 몰리면서 일부 시간대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버스는 운항 사흘 만에 탑승객 1만 명을 돌파했다. 관건은 이런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다. 속칭 ‘오픈빨’이라고 하는 초기 인기몰이가 잦아든 뒤에도 높은 탑승률을 유지할 수 있어야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하다. 그러자면 출퇴근 직장인을 포함한 단골 승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한 숙제다.
당초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도입하는 목적으로 ‘편안한 출퇴근길’을 내세웠다. 오세훈 시장이 2023년 3월 영국 런던 템즈강 페리를 타본 뒤 이 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한때 경기도 김포 경전철(김포골드라인)의 출퇴근 혼잡도를 덜어주는 대안으로 한강버스를 검토했지만, 결국 김포 노선은 제외했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1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확히 말하면 출퇴근용이라기보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강에서 대중교통의 정시성을 가져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행 타면 잠실~여의도 1시간 이내 현재 동서쪽 종점인 잠실~마곡 구간의 예상 소요 시간은 2시간 7분이다. 대기업·금융회사 등이 모여 있는 여의도를 기준으로 보면 잠실~여의도는 1시간 23분, 마곡~여의도는 47분이 걸린다. 반면에 지하철 9호선 급행을 타면 여의도~종합운동장은 22분, 지하철 5호선으로 마곡~여의도는 22분이 소요된다. 출퇴근 시간대 신속한 이동이 목적이라면 한강버스가 지하철보다 불리한 상황이다. 선착장이나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대기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한 탑승 시간만 계산한 것이다.
한강버스는 다음 달 10일부터 평일 운항 개시 시간을 오전 7시로 앞당기고 급행 노선(배차 간격 15분)을 신설할 예정이다. 급행은 잠실~여의도~마곡의 선착장 세 곳만 정차한다. 선착장 네 곳(뚝섬·옥수·압구정·망원)을 건너뛰는 만큼 선착장에 배를 붙였다 뗐다 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잠실~여의도 구간의 소요 시간은 1시간 안쪽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 70% 지분 보유 한강버스의 사업구조는 ‘반관반민’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선박을 사들여 한강에서 운영하는 주체는 ㈜한강버스라는 신생 회사다. 서울시는 227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강버스 선착장 일곱 곳의 설치를 맡았다. ㈜한강버스가 선박 구매와 운영, 부대시설 조성 등을 위해 조달한 사업비는 1523억원이다.
서울시는 최근 “㈜한강버스는 민간 회사”라는 보도 설명자료를 냈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울시가 산하 공기업을 통해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구조다. 원래 ㈜한강버스 지분의 51%는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나머지 49%는 이랜드 계열의 한강 유람선 업체인 이크루즈가 갖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랜드그룹이 추가 투자에 응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 계획도 틀어졌다.
지난달 29일 서울시의회에서 박수빈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배를 건조하고 사업을 꾸리는 비용을 SH와 이크루즈가 같이 내도록 계약돼 있다. 그런데 이크루즈가 이 돈을 안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분 비율을 7(SH) 대 3(이크루즈) 정도로 일단 바꿨다. 투자한 만큼 권한을 행사한다는 원칙은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한강버스를) 많은 시민이 이용하고 가능성을 보이면 (이크루즈가) 오히려 투자하고 싶어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때가 되면 늦다. 동업 관계에선 위험도, 손해의 가능성도 같이 나눠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연간 20일 정도 결항 예상
요금은 구간에 상관없이 편도 3000원(성인 기준)이다. 여기에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 환승할인을 적용한다. 이렇게 요금만 받아선 흑자를 내기 어렵다는 점은 서울시도 인정한다. 서울시는 연간 200억원 수준인 한강버스 운영비 중 승선료 수입은 약 50억원으로 전망한다. 나머지 150억원은 카페·편의점 등 부대시설 운영과 광고 수익으로 메운다는 계산이다. 부대시설 운영이 잘되면 수년 뒤 흑자 전환도 가능하다고 서울시는 기대한다.
현재 한강버스 선착장 일곱 곳 중 마곡·옥수를 제외한 다섯 곳에는 3층짜리 시설물이 들어섰다. 1층은 편의점, 2층은 ‘치맥’(치킨+맥주) 음식점, 3층은 카페로 배치했다. 만일 한강버스 사업에서 적자가 발생하면 서울시가 메워주는 구조다. 서울시가 2023년 시의회 동의를 받아 이랜드그룹과 체결한 협약서에도 이런 조항이 들어가 있다.
날씨 변화에 취약한 것은 한강버스의 약점이다. 지난 20일에는 팔당댐 방류량 증가를 이유로 한강버스 운항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홍수·태풍 등으로 기상특보가 발령되거나 겨울철에 한강 물이 얼어버리면 한강버스가 다니기 어렵다. 서울시는 연간 20일 정도는 결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